iPod Shuffle의 다채로운 색상과 새로운 이어버드!
새로운 색상에 새로운 이어버드 포함이라...
iPhone같은 미래의 제품에 관심이 쏠린 사이에, 이런 기습적인 발표가 나버렸다.이미 Shuffle을 쓰는 나로서는, 실버가 제일 무난하다는 위로만이 필요한 이 때,
새로운 번들 이어버드로 교체되었다는 이야기에는 정말로,아프리카의 크레넬레 부족이 사냥을 하던 톰슨가젤을 놓칠 때 외친다는 "썅!"이라는 그 말이 절로 떠올랐다.
앤디 워홀의 말로 유명한 이 말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게 여겨지게 된다.
|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을 알리는 한 문예지에서 이 글을 읽었는데, 솔직히 작가의 자만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분야의 창작가들이라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자긍으로 먹고 사는데, 항상 소설가들은 그런 자만을 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책을 정말 심각하게 읽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쓰레기"같은 책을 만나면, 화가 나서 분노를 불태우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도 있다. 김언수의 캐비닛은 13호 캐비닛이란 아주 평범한 한 잠겨진 캐비닛 속의 사건이나 사례를 소설로 묶어낸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건 전부 거짓말이다. 책 말미에 "주의사항"이라고 해서 친절히 설명해 두듯이 이 책에서 본 내용으로 지식을 자랑하다가는 언젠가는 망신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 동안 우리 나라 소설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국문학의 무언가를 깨려고 노력해왔다. 그러한 결실이 지금쯤 많이들 나타나고 있다면 헛된 기대일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박민규 같은 작가들이 많이 나와주어서 책을 읽는 게 많이 즐겁다. 평론에서는 어떤 식의 칼을 댈지 모를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어디 대학의 도서관 구석에서 낄낄거리며 책을 읽고 있을 나같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김언수의 소설은 그러한 기대를 과감하게 충족시켜 준다. 이건, 한국영화가 지독한 슬럼프를 겪고 있자 갑자기 4~5년 사이에 연쇄적으로 터져 나와 버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한 한국영화같은 이야기이다. 이미, 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설이 있구나, 하는 깨달음은 저 멀리 던져 버려도 될 정도 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들에 대한 하소연을 하는 "심토머"라는 사람들에 대한 하소연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란다거나, 잠실역에서 잠시 졸았을 뿐이다. 3년 후의 종로2가에서 내려 버리면 곤란하지 않겠느가? 여기서는 그런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들이 서술되어 있다.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소원 따위는 차라리 애교에 그칠 정도로. 그리고 그러한 신기한 이야기들, 권두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루저 실바리스의 이야기는 100퍼센트 거짓말인 티가 나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고,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서양을 배경으로 한 허구적 이야기를 꾸미는데 상당히 능숙한 화법을 구사해서 인지, 눈살이 찌푸려지는 어색함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가 등장한 이유는 책의 말미에 등장한다. 자신의 인생이 이유없이 불행하다, 사는 땅마다 땅값이 내려가고, 키는 너무 작고, 자신의 부인은 바람을 피운다, 면, 당신은 서울로 대변되는 현대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런 문제따위는 조간신문 묻은 흙먼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소한 것이라고. 어쨌든 어느 날 갑자기 침대 및의 악어가 다리를 물어 뜯어가버리지는 않지 않은가. 소설을 치유의 목적으로 읽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은 치료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위로받기 위해서라고? 천만에 말씀이다. 자신을 동정하는 짓 만큼 쓸 데 없는 짓은 없다. 사실로 다가온 것을 받아들일 용기만 있다면 뭐든 무서울 것이 있으랴. 우리는 한국인평균신장 따위로 재어 나온 표준 사이즈보다 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가끔가다 팔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못하는 세상이다.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게 능사가 아니라, 세상은 밝으면서 어둡고 더러우면서 깨끗한 곳이란 걸 깨달아야만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걸 왜들 모르는지. 그리고 애초에 선악의 구별따위야 없었다는 걸 그 누구도 용감히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현실을 들이댄다. 비록 자신의 허풍을 빌려서일지라도. 기발한 상상력의 만찬과도 같은 이 책을 저자가 쓴 이유는 빚을 값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처럼 명쾌한 설명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빚을 값기 위해 정말 좋은 책을 만들어냈다. 작가의 소감에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목욕탕에 갔다가 기분좋게 때를 밀고 돌아오는 길에 먹었던 자장면의 이야기를 한다. 과연, 이 소설은 그 자장면의 가치에 필적할만한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런 자신은 겁도 없이 상을 받고 책을 낸다고 한다. 그리고,작가로서는 가장 용감한 말을 던진다. 이런 허풍쟁이 소설가 따위에게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숭고한 문학정신 따윈 없었기 때문에 구구절절 맞는 말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근사한 허풍에 기꺼이 재화를 지불할 용의가 있고, 남들에게 감히 추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작가분이 "귀싸대기 맞을 각오는 되어있다." 라고 했으니까.자신의 책을 놓고 귀싸대기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작가라면 믿을 만 하다. 그리고 이 책은 귀싸대기 때릴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가서 힘껏 껴안아 드릴 만한 책이다. |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았다.
"거침없이 하이킥 보시면..."
아이폰의 발표는 여러 모로, 관심을 끌었고, 이제는 그 어떤 손바닥에 들어가는 기기이던지 간에 아이폰을 의식하거나, 애써 무시하거나 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정도가 되었다. 이건, 발매가 상대적으로 쉬웠던(시간 문제였던) 아이팟과는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반쪽짜리(현재로서는) 상품인 아이폰에 대한 과도한 세간의 관심이라는 문제에서 정말 넘어가서는 안 될 현상이다.
우리는 감히 아직 손에 넣지 못할 것에 대한 칭찬만 늘어놓고 있는지...우연히 인터넷 서핑중에 발견한 주옥한 글...이면 좋겠지만, 내 글을 맘대로 불펌하고 그래도 미안한지 트랙백을 걸어 놓은 친구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글을 다시금 트랙백을 걸고 있다. "트랙백이란 이런거야..."는 너무 거창하고... 사실 불펌했다가 문제생기면 내 책임같으니까...
섹스 앤 더 시티는 정말 재미있는 티비쑈이다. 정말 재미있다. 된장녀 논쟁으로 뭔가 럭셔리걸들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섹스 앤 시티의 4명의 여자들은 럭셔리한 것만 밝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활발하게 사는 당당한 아름다운 여성의, 요즘 여자들의 덕목 같은 것을 표방한다. 그런 걸 싸구려 스타벅스 커피 논쟁으로 전락 시키기에는 정말 아까운 프로그램이다.만약 이런 이야기를 전원일기 풍으로 꾸민다면......그루비한 째즈풍의 오프닝 테마송과는 달리 '전원일기'의 오프닝 테마가 울러퍼진다. 농촌의 들녁과 산마루등이 시야에 펼쳐지며 시트콤은 시작한다...새참먹어, 이년들아!"샬롯이 앙칼지게 소리친다. 캐리와 머랜더는 흙묻은 손을 몸빠바지에 훌훌 털며 일어나 샬롯의 머리에 진 다라이를 내려놓는다. 농번기의 그네들의 브런치시간인것이다. 다라이를 씌우고 있는 보자기를 열자 저지방 저칼로리의 샐러드 일색이다. 산채나물, 냉이, 숫갓, 미나리, 방아잎파리.... 그들은 된장과 함께 밥에 슥슥 비벼 숟가락으로 그것들을 입에 퍼나른다.
"그런데, 사만다 이년은 어디간겨?"
사만다는 이 마을에서 자유로운 연애관과 화려한 성이력을 자랑하는 그들의 친구이자 잠자리 조언자이다. 동네사람들은 사만다를 '화냥년'이라 부른다.
"몰라, 어디서 또 사타구니 벌리고 있겄지."
차갑고 냉철한 성격의 머랜더가 밥알을 튀며 말했다. 순간 들녁넘어 푸른 보리밭에서 바람한점 안부는데 보리가 나부끼는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걸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 보리밭속에서 속옷을 올리며 일어서는 사만다와 몇일전 품앗이로 이 마을로 온 떠꺼머리 숫총각 칠성이의 모습이 보인다. 사만다는 겸연쩍은듯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오고, 칠성이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입고 그곳을 벗어난다.
애플의 인텔로의 이주와 맥북의 발매를 지켜보고, 맥북을 구입해 사용하면서, 기술의 발전이 이렇게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Apple이 "Computer"라는 이름을 지우고, "Apple Inc."로 이름을 바꾼것은, 이제 애플은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 애플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활발한 세일즈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내린 결정일 것이다. 이번 iPhone 발표가 주가 된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를 보면서 머릿속에 계속 떠도는 말 한 마디는 "아이폰에서는 맥 오에스 텐이 돌아갑니다.(iPhone runs Mac OS X)"라는 말이었다. 기술의 첨단을 달린다는 우리 나라의 IT업계에서는 기존의 iPod시리즈의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는 이미 구현한 것."이라는 말로 심드렁한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간담이 서늘할 것이다. iPhone은 그 동안 모든 기기들이 이루고 싶어하던 컨버전스를 가장 훌륭하고 세련되게 마감했다. IT기기들은 물방울도 아니면서 서로 합쳐지고, 기능을 변화하고 바꾸게 된다. 휴대폰에서 천만화소의 이미징 처리가 가능하고, PMP라는 개인용 비디오 플레이어도 나오기도 한다. PSP는 그러한 점에서는 가장 진보한 기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기들의 컨버전스에는 항상 뭔가가 아쉬운 점이 있었다.하지만 iPhone은 "휴대폰"이란 단 하나의 기기에 여러 가지 기능을 넣기 위해 당연한 선택을 했다. Mac OS X를 휴대폰에 넣는 것이다. Windows CE는 이미 PDA에 탑재가 되고 있다. PDA는 사실상 못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Mac OS X는 기존 데스크톱 OS의 UI를 모바일 환경으로 이전하면서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를 도입함으로서 기존의 그 어떤 솔루션도 다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새롭게 발매되어 핫하고 쿨한 것이라면 으례 아직은 기술이 지보하지 못했으니까, 하는 생각을 할 소비자를 생각하면서 이러 저러한 기기들이 많이 출현해왔다. 그런 와중에 필요없는 부가 기능을 거부하는 디버전스 개념도 나오기도 할 정도로... iPhone의 키노트 영상은 터치스크린이 마우스나 키보드를 어떻게 대체할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그 전의 상식밖의 복잡한 UI에 대한 문제도 현재의 Mac OS의 인터페이스 운용방법을 응용해 거의 불편이 없고 중간에 멈춤이 없는(seamless) 조작이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길을 잃을지도 모를 우리에게 "Home"버튼을 부여했다. 이러한 노력은 휴대폰+iPod+인터넷 브라우징이라는 가장 매력적인 요소 세 가지를 슬릭한 기기에 가감없이 채워넣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술발전에 도취해서 무시해 버리는 손에 쥐쥐도 못할 디자인이나, 잘못 눌려지는 터치스크린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센서들의 장착도, 혁신적인 기술을 책임감있게 도입한 애플의 노력을 돋보이게 한다.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이전에 다 있던 것들이고 누구나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폰보다 괜찮은 기계를 또 만들어 낼 지도 모른다. 하지만, Mac OS X라는 굉장한 우영체제가 손바닥만한 iPod기기에서 돌안다는 사실을 따라잡을 회사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여러 휴대전화 회사들이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운영체제를 개발중이고 오페라는 Opera Mini라는 혁신적인 모바일 웹 브라우저를 개발하였고, 채택하는 회사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애플은 Computer라는 글자를 지워버리기 위해 아주 은근히 Mac OS X를 손바닥안에 넣고 그들의 웹 브라우저 사파리까지 아낌없이 채워넣었다. 아직 모르겠는가? 이제는 진짝 그럴듯한 기술만이 혁신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음을... 이제는 첨단 아이디어와 새로운 트렌드란, 바로 지금 손 안에서 프로페셔널하게 구현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를 30년만에 "Computer"란 글자를 지워버린 애플이란 회사가 문을 열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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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2.0 경제학 김국현 지음/황금부엉이 |
| 웹2.0에 관한 글을 수집하기 위해, 블로고스피어를 방황하다 길을 잃기 쉬운 우리에게 나침반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코드 한 줄 없는 IT이야기"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김국현은 낭만IT(goodhyun.com)라는 블로그와 지디넷 컬럼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김국현의 글은 읽기 쉽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IT와 우리 생활이 밀접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할 개념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판단을 내리게 하는 중립적인 가치도 잘 지켜내고 있다. 어쩌면, 급변하는 IT에서 가장 제대로 현상을 짚어낸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드한 줄 없었지만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던 지난 번 책으로, IT를 통해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에 대해 많은 걸 배웠기 때문이다."웹2.0,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이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꼭 있을 것이다. 어쩌면 미니홈피에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사진을 올리고, 도토리를 계획적으로 지출하고, 네이버 블로그를 웹서핑의 스크랩북으로 활용하고, 리포트의 출저는 절반 이상이 네이버 지식iN인 대다수의 사용자들에게는 웹2.0이란 개념이반가울 리는 없는 것이다. 무심코 리모콘을 들어 채널을 돌리면 개콘 재방송이 흘러 나오듯, 그냥 네이버 검색어 순위 만큼의 IT라이프란 것이 그리 불편할 것 없을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어떻게 인터넷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지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준다. 웹2.0은 모두가 주시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용어적 정의를 내리지 못한, 정말로 애매한 영역이다. 단지, 파이어폭스라는 새로운 웹브라우저의 출현과, 블로그를 통한 개인 미디어의 소통 창구가 생겨나고, 인터넷 스토리지 기반의 공유정보관리 시스템들이 나오는 등의 동시다발적인 여러 서비스 들의 출현으로 그 전의 웹과는 좀 달라졌다는 것 뿐이기 떄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 얼마만큼 이러한 물결에 동참할 것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무의미한 논쟁과 의문만이 있다. 우리는 웹 2.0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 책은 웹 2.0의 방대한 마인드맵에 찬사를 늘어놓고, 무조건적으로 딜리셔스에 북마크하라던지, 모든 사진을 플리커로 업로드하라던지, 구글 검색의 결과만이 진리이다, 라는 트렌드에 치우친 충고를 아끼는 대신, 웹 2.0이란 개념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인터넷이란 도구를 윤택하게 할 수 있는가를 인터넷 상에 위치한 세계인 "이상계"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 우리가 주변의 정보를 이상계에 저장하고 이상계를 통해 소통할 때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아주 간단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필체로 묘사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 동안 블로깅을 통해 발표한 어떤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인터넷 사용시 불편했던 점을 어떻게 개선할 지에 대해 어떤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렸던 글 등이 떠오르면서,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이끌어가던 사회에, 웹 2.0이라는 민주적이고도 개방적인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웹의 최종 소비자인 '우리'가 그러한 세계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웹 2.0의 물결 때문에 갑자기, 모든 네티즌들이 구글의 애드센스로 얻은 수익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친구들과의 대화도 트랙백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한계라고 느꼈고,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 중 많은 일이 손쉽게 실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만큼은 인정을 해야한다. 자신에게 웹 2.0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당신의 말 한마디에 전세계가 술렁거릴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친 것이다. 웹 2.0의 물결은 단지 버전업된 웹의 서비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넘어서 인터넷 없는 우리 삶을 상상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웹표준을 지키자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웹표준을 지키자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웹표준은 언제부터인가 파이어폭스를 통한 브라우징이 가능한가가 기준처럼 되어가는 것보다, 윈도에서 되는데, 맥이나 리눅스에서 안된다는 문제보다 사실은 더 중요한 건, 크로스플랫폼을 준수해서 얻는 효율성에 있다.인터넷과 컴퓨터 환경은 아주 빠르게 변해간다. 1년 전과 1년 후의 지금 자신의 컴퓨터에서 하는 일을 생각만 해봐도 알 것이다. 내가 웹서핑을 하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맥의 파이어폭스와 사파리와 오페라를 넘나 들면서도 열리지 않는 대학도서관이나 인터넷뱅킹같은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보강국이라 불리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는 쓸 데 없이 튀어나와 있는 도로의 둔턱같은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