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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07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쇼의 예의 그 유명한, 광고에서 사용되 진정한 팬들을 분노케 했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시간은 11시 58분이 조금 넘은 시간 홍대 앞에서 새로 생겼다는 클럽 Blurr를 찾고 있었다. 툴과 조커레드를 지날 무렵,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한 살 먹는구나, 스물일곱이 되는구나, 하며 Blurr에 다다른 순간, 오늘 예정된 블랭크 앤 존스의 긱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듣게 된다. 클러빙이고 나발이고 그냥 상수역까지 걸어와 집으로 오는 전철을 탔다. 편의점엔 신라면이 동나있었고, 날씨가 추워 클럽 앞에는 입장 못한 사람들이 얼어붙어 있었다. 응당 슬프거나 짜증나거나 아쉽거나 하는 감정이 샘솟하야 할 터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길바닥에 날려버린 나의 캔슬된 새해는 그러니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던 지도 모른다.

얼마 전부터 생각해 둔 새 해 다짐 같은 걸 조그맣게 끄적여 본다.

해피 뉴 이어

새 해에는

1. (계속해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겠습니다.
2. (계속해서) 네이버 뉴스의 댓글을 보지 않겠습니다.
3. 한 번 본 심슨, 어글리 베티, 리퍼등의 에피소드들을 다시 보지 않겠습니다.
4. 전철에선 아이팟 나노의 동영상을 보는 대신 책을 읽겠습니다.
5. 캐논 익서스 70의 성능을 탓하지 않고 저의 부족한 이해도를 탓하겠습니다.
6. 귀찮더라도 맥북을 정리하고, 점검도 맡기겠습니다.
7. 올 해 이루려 했으나 못 이룬, 제게 가장 필요한 두 가지를 하겠습니다.
8. 맞춤법 공부를 하겠습니다.
9.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0. 내가 화 낼 일만 화내겠습니다.
11. 스팸전화를 친절하게 뿌리치지 않겠습니다.
12. 예의상 하는 말을 줄이겠습니다.
13. 좀 더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겠습니다.
14. 두려움이 들어도 해 볼 건 해 보겠습니다.
15. 잘난 척 하기 이전에 공부를 더 하겠습니다.
16. 필요 없는 잠을 줄이겠습니다.
17. 청소를 자주 하겠습니다.
18. 다음 해에는 위의 것들이 지켜서 더 이상 새 해 다짐으로 쓰지 않겠습니다.
19. 거짓말 하지 않겠습니다.
20. 거짓말을 해도 착한 것만 하겠습니다.
21. 거짓말을 해도 들키지 않겠습니다.
22. 도망을 잘 다니겠습니다.
23. 그 다음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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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얼마전에 배운 스페인어 시간에는 Feliz Navidad라고도 하던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탄생일이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명절로 이용되고 있는 걸 어떻게 볼 지 궁금합니다. 교회에서 기도해도 답은 없는 것이겠죠.

모두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나 자신에게도,
그 밖의 모두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그 밖의 모든 가족에게도

크리스마스라 모든 식당이 예약이 되어 맥도날드에서조차 기다려야 할 당신이라도,
오후 4시를 기점으로 아무 약속이 없는 상태라서 모레 아침까지 잠과 영화 치킨을 반복할 당신이라도,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어 도로에 올랐지만, 도저히 차량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한 당신이라도,
이런 식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줄 몰랐다고 슬퍼한 지 몇년인지 모를 당신이라도,

무엇보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그 어느때보다 행보할 누군가에게도

메리 크리스마스 앤 어 해피 뉴이어 입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밎지 않는 이들을 위해선

해피 할러데이스 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특별한 방법은 그 누군가와 어딘가에 있건 간에, 자신을 동정하지 않고, 자신을 위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 뿐일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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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나

에 대해 글을 쓴 다는 것은 여려운 일이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들과 귀에 들어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그것은이란 주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지, 그에 비해 라는 사람을 주어로 서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그 동안 포스팅하려다 저장만 해 둔 다른 공개하지 못한 글들에서 느껴진다.

2007년을 결산하는 글을 쓰고자 마음을 쭉 먹고 있었다.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했던 게 2005년 말일 경이었다. 도메인을 구입하고 태터툴즈를 설치하고 세팅하다가, 1월 1일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곧 2008년 1월 1일은 공식적으로 2년이 된다.

2007년의 학교 생활은 1학기와 2학기로 나눠져 있었는데, 1학기는 패기에 넘쳤고 자신감에 넘친 반면, 2학기는 도저히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블로그 포스팅을 보면 상반기 포스팅들이 좀 더 읽기가 좋다. 2학기는 글을 쓸 때에도 몇 번씩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던 글들이었다.

2007년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극명한 대비가 보이던 때였다. 가령 예를 들면 나는 소설을 읽으면, 그 소설 안의 한정된 세계관은 정말 잘 파악하고 캐릭터간의 관계도 잘 파악해 내는 편이라 관련 수업이나 글을 쓸 때 즐겁게 쓰는 편이다. 하지만 실제 생활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점이 많아서 자신감이 부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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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입니다(?)

지금 A4용지를 나눠준다. 자신이 강의하는, 수업을 하는 강의실이라고 해도 좋고 하여간 당신이 뭔가를 지시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가정한다. A4용지에 "활기찬 아침을 맞는 사람들"이란 주제로 대화문을 작성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아침!

이란 말을 인용해 쓸 것 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외국어/외래어 표기 문제보다 고쳐져야 하는 습관 중 하나가 바로 이 "좋은 아침"이란 말을 쓰는 것 같다. 아침이라는 시간적 구분과 그 앞에 "좋은"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습관은 사실 서양에서 가져다 쓴 것에 불과하다. 다른 인사에도 문제점이 있을 지도 모른다. 밤새 안녕했냐는, 혹은 식사를 하셨냐는 그런 인사는 너무 개인의 신상에 깊이 파고들기 때문에 쓰질 않는걸까.

Good Morning /  Guten Morgen 같은 말이나 라틴어 권의 Buon(a)를 붙이는 인사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이런 어색한 인사는 방송에서도 널리 사용되면서 표준어처럼 인식되는 것 같다. ~한 무엇이라고 쓰는 말투가 실제로 써봤을 때 많이 어색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좋은 아침"같은 불편한 인사도 없을 것이다.

아침이 좋으면 하루가 아니 인생이 좋아지고, 햇살이 밝은 아침에 "좋은"인사를 하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냐고 한다면 해드릴 말씀이야 없지만서도.

새로 대통령이 되신 분의 첫 마디는

좋은 아침입니다.

였다고 한다.

글쎄, 사소한 것으로 꼬투리를 잡는 건 비겁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틀린말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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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

은하해방전선은 올 해 독립영화계에서 유난히 주목을 많이 받았던 영화이다. 어떤 사건에 의해 많이 알려지게 된 청년필름의 작품으로, 상당히 유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팔레스타인해방전선이니 하는 그런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 제목들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선정했다고 한다. 그만큼 치열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고민과 스트레스가 덜 한 것은 아닌 느낌이다. 한글자막이 달린 회차를 보게 되었다. 사실 영화에는 '자막'이 보조 요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전체를 해설하는 자막을 같이 보니 사실 오묘한 재미가 느껴졌다. 사람들끼리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장면에서 그 자막이 주는 느낌은 영화의 아이러니컬함을 더 해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나리오와 부산국제영화제를 배경으로 한 "한국영화계"를 암시하는 듯한 은유 등을 통해 비춰지는 이야기는 나중에 극중 PD가 "야 이런다고 죽지 않아 너 나중에 이 이야기도 영화된다."라는 말로 종합(?)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스트레스와 연애에 대한 소소한 고민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한 터라 그런지 영화는 곳곳에 수다스런 유머와 적당히 끊어 넘기는 경쾌함이 숨어 있다. 만일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훈훈함이 없다면 굳이 이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을 듯.

이 영화에 대해서 말로 표현하길 극히 힘들 듯 하다. 상영시간 내내 전체를 궤뚫는 그 '분위기'를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감독이 말 대신 악기소리를 내는 병에 걸린다. 영화 한 편 만드려고 하니 여기저기서 뜯어 먹지 못 해 안달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여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한다. 영화에 필요한 기무라 레이라는 일본 아이돌 스타는 헛소리만 주구장창 지껄이더니 선배영화감독과 자신이 기획한 스토리와 아주 비슷한 풍의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재능은 있는데 알아주지는 못하는' 지금의 젊음을 대변한다.

#
영화에 대해 무슨 말을 하지?
- 그냥 "인간"이나 "소통"이런 말 집어 넣으세요.

#
말이 안 나온다라...
혹시 집안에 정신병력을 가진 분이 있으신가요?
- 사촌이 조선일보 기자에요.
아, 그거 큰일인데요

이쯤되면, 이 영화가 주는 대사의 미학과 저변에 깔린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풍자를 좀 덜 부담스럽고 더 경쾌하게 친다는 장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풍부한 동시대적 감성을 마구 마구 뒤섞어 내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촌극'이나 '소동극'같은 느낌도 들고, 코믹한 요소도 그리 자극적이지 않지만 신선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성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서투른 게 너무 많다. 반면에, 가능성도 무한하다. 결국은 응석 부리는 것을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연애와 영화만들기(자신의 소명?)에 둘 다 서투른 나는 말만 많아져서는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를 우습게 보려는 사회, '그것'이라는 것으로 뭔가를 공유하는 듯한 어려운 말을 잔뜩 늘어놓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그들에게 피식 웃어주자는 제스쳐를 볼 수 있어서 기뻤다.

*20일에 인디스페이스의 상영이 끝난다고 한다. 하이퍼텍 나다나 다른 개봉관을 찾아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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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IMAX DMR 2D)

나는 전설이다는 수많은 좀비물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리차드 맷슨(Richard Matheson)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여기서 좀비에 해당하는 존재는 원래 원작에는 뱀파이어로 등장하고, 이 영화에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빛을 싫어하고 산사람들을 뜯어 먹는 존재로 설정된다. "They"라던가 "Dark Secret"이라고 표현된다. (이걸 굳이 '좀비'라고 번역한 건 지나친 친절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Dark Secret"하게 되고, 자신만이 그것을 해결할 백신을 갖고 있다면, 이란 전제로 시작되는 영화는 평화롭고 황량한 사람이 업는 뉴욕 시내를 곳곳에서 비춰준다. 이러한 공허함은 이내 어둠이 내리고 들이닥칠 존재들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켜 볼 수가 없다.

이 영화는 28일 후(28 Days)같은 영화보다 더 성찰을 요구한다. 좀비를 모티브로 한 오래된 고전의 영화화에 최첨단 그래픽과 특수효과로 무장한 액션을 기대한다면 아마 많은 실망을 할 것이다. 윌 스미스가 연기한 네빌이라는 인물은 무기와 의료자입로 중무장한 채 세상을 구하려 하고 있지만 주변을 감싸는 공허한 기류에 혼란스러워 하고 절망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는 어떤 살육이 주는 쾌감 보다는 공포와 삶의 희망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둔다.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고도의 기술로 재현된 게임적 화면이 아니라 고립된 사회에서 나 아닌 다른 적들을 대적해야 하는 의무감과 책임감과 그 이면의 나약함을 고스란히 떠안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악에 대한 강한 응징과 파워풀한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의 모습을 기대했다면 적잖이 실망할 네빌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도 이야기적 개연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가 전설이 되는 방식은 아주 특별하다 못해 종교적 숭고함 마저 느껴진다.

IMAX DMR 2D로 상영된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커진 화면에 더 박진감 넘친 사운드의 깊이 만큼이나 더 큰 담력을 필요로 한다. 든든히 배를 채워 긴장과 공포에 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네빌이 소리치는 공허한 메아리의 울림과 아무도 없는 도로를 서서히 차에서 멀어지며 오랫동안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쓸쓸함의 극대함과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쫓아오는 괴물의 움직임이 주는 공포감은 IMAX에서 그 진가를 발견한다. 상상해 보라, 실물 크기로 달려오는 빠른 움직임의 '그들'의 무리를.

나는 전설이다,가 주는 감정을 더 깊이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IMAX판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거대한 공동화된 도시에서의 외로움과 보이지 않는 공포에 대한 표현을 극대화하는 매체로서 그 깊이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뒤에서 들리는 듯한 '그들'의 살의와 흠잡을 데 없이 선명한 해상도의 영상은 영화를 보든 또 다른, Blu-ray의 시대에 극장을 가야 할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본편이 시작되면, 새로 제작중인 배트맨(배트맨 비긴즈의 속편)의 일부 영상을 IMAX판으로 보여준다. 단지 샷건을 재장전 했을 뿐인데 깜짝 놀라게 되는 육중한 사운드와 손에 만져질 듯한 배우들의 동작 하나 하나를 볼 수 있을 이 비디오 클립 때문에 더욱 더 기다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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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었는가

고전을 읽는 것이 괴로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아니라면, 적어도 나는 고전을 읽지 않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영어학부에 있다고 하면 의례 통역이니 번역이니 할 때 나는 영문학을 선택했고, 아직도 다른 전공 선택을 할 생각은 없다. 학업적 성취도나 도전의식 같은 것이 큰 건 아니지만, 만족도를 따지자면 굉장히 좋은 선택을 했다. 또, 영문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영어로 문장을 올바로 써야 할 컴플렉스가 생기는 만큼 한국어 문장을 올바로 써야 할 책임감도 같이 느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 동안 무시하면서 살아 온 테마라서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막상, 영어를 잘 하면서도 시험 답안에 쓰는 보잘것 없는 문장들을 보거나, 한국어로 쓰는 블록그에 글을 쓸 때 맞춤법이 헷갈려서 다른 단어를 선택해 사용하는 식이다.
이 쯤 되면, 다들 눈치를 챘을 것이다.

기본기가 부족하다
나는 기본기가 상당히 부족하다. 그렇다고 이를 개선하려는 생각에 계획만 무성한 편이지 실제로 뭔가 해 본 적이 없다. 지난 주에는 맞춤법 책을 사 두고는 시험을 핑계로 서점 종이봉투에서 꺼내지도 않고 침대 밑에 둬 버렸다.
영문과 학생으로서도 못할 짓을 하고 있다. 의례 영문과 학생이라면 알아야 할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무시하고 살아 온 것이다. 이러한 고전은 동시대성의 결여와 서양문화에 대한 사대주의라고 비판을 하려고 해도 사실 읽어야 할 것들이다. 고전은 좋든 실든 간에 필수적인 요소인 셈이다. 어릴 때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할 미역같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박민규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을 오랜만에 빼 들었다. 소설을 읽을 때 보지 않았던 서평이나 에필로그를 훑어 보다 보니 도정일 교수님의 평과 글이 눈에 띄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학교 행사도 참여 하지 않은 게으른 인간이라 교수님에 대해 알게 된 건 요즘에 들어서이다. 그래서, 얼마 안 있어 더 이상 강의를 하지 않으실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도 준비를 많이 못 해가는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작가 박민규 씨는 인터뷰 같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독서는 복서에게 러닝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면이 있는 반면 시키는 대로 하려는 성격도 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냈다가 도정일 선생님의 혹독한 심사평을 읽었습니다. 투고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었는데 천박함에 대한 꾸지람 끝에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는가? 톨스토이는 읽었는가?라고 하셨어요. 글쓰는 중간중간 "백경"을 비롯해 고전작품들을 읽었습니다."
-지구영웅전설 중, 인터뷰 "그는 중심을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인터뷰어 하성란, 소설가)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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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지음
만장일치로 "일단 재밌다"고 했던 심사의원들의 평에 고개가 절로 끄덕끄덕. 그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을 거둔 셈이지만, 그 뿐이라면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이란 타이틀에 걸맞겠는가. 이 작품의 백미는 '만화의 이면'에 숨은 권력의 실상을 비틀고 짜고 돌려쳐서 마음껏 조롱함에 있다.

그의 독특한 문체 때문에 "(피식) 고전? 그딴 건 해피스모크나 말아 필 때나 필요한거라구."라고 흐물거릴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인 셈이다. 그는 동시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문체의 작가가 되기 위해 기본기를 아주 열심히 다듬은 셈이다. 이런 배경의 노력을 무시한 채 그의 옷차림이나 말투나 마케팅을 위한 수식어에만 열중한다면, 예전의 그 "낭독의 발견"의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도정일 교수님은 어린 자신의 학교제자들에게는 이런 혹독한 평가를 내리지는 않으신 채, 최대한 많은 책을 읽고 사유하고 발견의 감동을 이끌어 내도록 이끌어 주시는 편이다. (그런 점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칭찬에는 무한히 녹아 내리고, 쓴 충고에는 의기소침해 지는 인간이다.) 하지만, 달콤한 말씀 사이 사이, 이러한 고전에 대한 필요성, 천박함을 가지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할 자세같은 것에 대한 충고는 잊지 않으신다.

목요일이면 교수님이 출제하신 문제로 기말고사를 칠 것이다. 아직, 이번 수업 교재인 "서양 전통 지식사(The Western Intellectual Tradition)"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 파트별로 내신 북레포트는 부끄럽게도 위키피디아와 참고서 사이트(클리프노트와 스파크노트류)를 무참히 베껴서 냈다. 나는 세계사를 공부하지 않아서 모르는 건 당연하다고 발뺌만 했었다.

어느 날 교수님과 제자와 교수 사이가 아닌 다른 평가의 기회 앞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얼만큼 할 말이 있을까?

고전을 읽었는가?
틈틈히 철봉에 매달리고, 가파른 계단도 뛰어오르고 남들보다 삼십분 늦게 자면서 근육운동을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듯. 고전도 읽고 사전도 열심히 찾고, 모르는 것을 열심히 리서치하는 자세를 가져야 겠다는 다짐을 또 한 번 해 본다. 언젠가 고전을 읽었는가?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는가? 백경을 읽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그 대답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시간을 내어서 대화에 필요한 책을 읽었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할것이다.

아마 몇 년 지나지 않아, 고전이란 것이 시대착오적인 점과 이미 국적성을 상실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강조하는 것이 얼마나 오류투성이 인지를 비판하기 위해 잘난 척 하는 글을 또 써제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렇게 나온 텍스트가 정보 과잉 시대에 쓰레기가 되지 않고, 그런 나의 태도가 모르는 것을 감추기 위한 비겁함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고전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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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

어제 종로 반디앤루니스에 책을 사러 갔었다. 내가 찾던 책은 문학쪽, 시와 수필이 있던 서가에 있었다 찬찬히 책을 살펴보던 중, 한 여자분이 점원에게 뭔가를 조용히 말씀하시고 게셨다.

이 책 여기다 두지 마시고 신경 좀 써주세요?
- 네, 어떤 책 말씀이신가요?
여기 이렇게 쌓아두지 마시구요. 저자분 사무실이 이 근처인데, 찾아오시는 지인들마다 책이 없다고 말씀들 하셔서요. 좀 신경 좀 써 주세요.
- 아, 네.

여자분은 그러고 다른 코너로 가시고, 점원들은 다시 업무에 몰두했다. 나는 내가 찾던 한 시집을 고르느라 얇은 제목이 인쇄된 다른 수천권의 책을 면밀히 살펴 본 다음에야 거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단지, 신경을 쓰지 않는 건 그 책 하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제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마케팅 담당이겠지."라는 말을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화난 커스토머를 가장한 클라이언트의 입김에 조금은 엑스트라한 신경을 쓸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산 책은 '홍대 앞 금요일'이란 시집이었다. 나는 결코 시를 제대로 읽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성기완 시인의 시가 있는 동인지, 그것도 '홍대 앞'이라는 테마로 나온 책이라서 구입을 한 것이다. 나에게 누군가 문학의 종말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묻는다면 할 말은 없겠으며, 던지는 돌도 맞고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이다. 그리고, 나는 비겁한 변명조로 "그럼 다른 책들이라도 많이 팔린단 이야기인가? 평균적으로 나는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란 말이얏!"이라며 울부짖을 지도 모른다.

아까의 천대받는 책의 경우나, 찾기 힘든 시집의 경우나 이런 차별은 더욱 더 심화될 것 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영어 문법책 시리즈는 표지와 테마를 달리 해 서점 곳곳의 매대에서 흘러 넘치고 있는데, 정작 뒤늦게 관심을 가진 한국어 맞춤법 책은 아주 소극적인 디자인에 일부 서가를 수줍게 자리 잡을 뿐인 세상인 것이다. 여기에, 한국 대중의 무관심과 반디앤루니스 같은 거대 자본의 횡포 같은 것으로 비난을 돌릴 이유조차 없다는 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세상이 변한다는 건,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우스꽝 스러운 일일 뿐이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체제의 전복이란, 단지 관청의 이름만 바뀌는 것일 뿐. 다들 멍청이라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시스템(혹은 구조)은 이상하게도 꿈틀거리며 그 모양을 바꿔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변화는 여기 저기 나타나고 있다. 그 흐름에 손을 내밀거나 말거나는 자신의 선택일 것이다. 결국, 어떤 선택이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태도만 있다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는 때건 되풀이되고,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다.

***가 죽고 있다.

***의 종말이다.

도와달라고 하는 호소보다 어쩌면, ***라는 것이 존재할 이유를 새롭게 설득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에는, 꼭 누군가가 그 옛날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까마득한 '더 옛날'을 들먹일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가 끝나고, 이상하고 우스꽝 스러운 것들이 새롭게 판을 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냉정하게 관찰을 해야 한다. 이것이 끝나지 않아야 할 것이라면, 끝까지 지켜보거나, 아니면 새롭고 이상하고 우스꽝 스러운 것으로 다시 포장해 내거나, 그래도 안 된다면, 다시 한 번 관심을 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물론, 도움의 요청은 최대한 '소비자'의 마음과 지갑을 열 정도로 쿨하고, 처절하고, 아름답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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