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하지마 주눅들지마 가고싶던 곳 기다렸던 날 지금 여기야
노래방에서 ‘옛날 사람’ 안 부르신 분 계십니까!
라는 향뮤직의 광고문구가 눈에 우연히 들어오면서, 누가 아는 사람이 나한테 메일을 보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언제든 부르던 게 옛날 사람이었다. 지난 10년간 아무도 모르게 원더버드의 유일무이한 데뷔앨범을 듣고 다녔었다. 최근에는 옛날 사람이나 사랑이 아니야 보다는 악어새와 기타맨과 히피걸 같은 노래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듣고 다녔다.
원더버드의 앨범은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발매가 되더니, 비틀즈의 복고풍이란 뻔뻔한 거짓말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오아시스 같은 록스타일에 삐삐롱스타킹만의 사운드 실험과 신윤철의 신기에 가까운 기타실력이 들어간 굉장히 이상한 명반이었다. 그리고 이 앨범을 끝으로 밴드는 해체되고 만다. 옛날 사람만이 노래방에서 알음알음 전해지는 히트곡이 되어 버렸다.
10년만의 재결성 공연은 그랜드민트 때의 반짝 재결성을 아쉬워해서 다시금 멤버들이 뭉친 기념 공연이라고 한다. 정말 우연찮은 기회에 이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접하게 되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십세기가 그런거지
이 앨범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가사 부분이다. 우리는 이십일세기라는 눈부신 새 천년을 맞이했다고 하지만, 실상 우리 주변에서 크게 변한 건 없다. 이를테면 아이폰 같은 것들이 나와서 센세이션을 일으킬 지 몰라도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간 만큼의 충격은 없었다는 것이다. 인문학자들은 그래서 아직도 이십세기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이십세기폭스사 마저 이름을 바꾸는 걸 포기했다.
예수님의 나이가 1999살이던 밀레니엄을 깐죽거리며 맞이하던 이 밴드의 음악은 인디와 메인스트림, 얼터너티브와 모던 록 혹은 뉴메탈, 일렉트로닉 등의 세기말의 불안을 향유하던 시대에 나온 독특한 앨범이었다. 그리고 이 앨범의 음악은 시간을 계속할수록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을 주며 이십일세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많은 록 공연을 가 본 건 아니지만 아마 원더버드의 공연만큼 좋았던 적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10년전에 단 한장의 앨범을 낸 밴드의 팬들이라 노래가사들은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심지어는 다음에 어떤 음악이 나올지도 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신비주의같은 컨셉을 내세운 팀도 아니라서 굉장히 옆집 삼촌들처럼 귀여운 태도로 공연을 이끈다. 아마 이들이 립싱크를 했더라도 사람들은 이해했으리라 그만큼 가까운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동네잔치를 하듯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이 공연의 연주나 퍼포먼스가 단순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약간 녹이슨듯한 손짓이긴 하지만, 펑키하고 댄서블한 비트를 이끄는 박현준의 베이스와, 드럼스틱이 부러지자 별 일 아니라는 듯 뒤집어서도 훌륭한 연주를 한 손경호의 드럼, 록보컬에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어떤 노래든 잘 불러내는 고구마와 엄청난 기타리스트이지만 평소에 그 모습을 과시하지 않는 신윤철의 라인업에 앨범 1장분량에 해당하는 노래들이 연주되는 공연의 밀도는 이루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가사 한줄도 빼놓지 않고 따라 부르며 방방뛰고 춤추고 했던 정말 즐거웠던 공연이었다. 아마 평생에 이런 공연을 다시금 가 볼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평소에는 사랑이 아니야를 들을 때마다, 이거 뭐야 오아시스 Don't Look Back in Anger나 따라하고 하면서 삐딱선을 탔지만, 오늘 사랑이 아니야를 따라 부르며 공연을 즐길 때는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아마 우리나라 로큰롤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을 쓴 팀이 아닐까. 하면서.
정말 1집 앨범의 노래를 천연덕스럽게 한 곡도 빼놓지 않고 플레이하던 밴드는 뻔뻔하게도 끝났다고 나가는 시늉을 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치고는 팬들이 굉장히 불안해하며 앵콜을 열창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밴드는 다시 들어와 약속이나 한 듯 마지막 곡인 옛날 사람을 연주했다.
정말 지금까지 숱하게 이 노래를 듣고 불러왔지만, 오늘같이 감동적인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가고 싶던 곳 기다렸던 날이 정밀 지금 여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반짝하고 지나갔던 한 밴드의 음악을 10년동안 몰래 들어온 팬으로서 황송한 보답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맞춘 호흡이 아까우니 앨범 하나 정도는 냈으면 하는 능청스러운 부탁도 하나 하고 싶다. 그나저나 오늘 새삼 느낀거지만 신윤철씨의 기타 실력은 정말 어디 광고라도 내서 알리고 싶을 정도이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와 기타 만으로도 SF적이다가도 밀림의 더운 기운을 느끼게 하는 다채로운 앰비언트를 만들어낸 그의 아이디어도 너무 멋있었다.
술을 마시면 생각이 나는 옛날 사람처럼, 문득 문득 듣고 싶어지던 원더버드를 새롭게 들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