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눈과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그 무엇 - Babel
바벨은 옛날 신에게 도전하던 인간의 상징이었고, 그 탑이 무너지면서 인간사회에는 차이라는 것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내가 듣고 자란 내용이다. 내가 잘못 알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 내가 이해한 내용은 그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갖고 있는 고민은 거의 대부분이, 다른 것을 나에게 익숙하게 만들고자 할 때 발생한다. 언어의 차이와 자원의 차이, 그리고 어김 없이 이어지는 폭력이 그것이다.이 영화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조금씩 잘라서 엮어두었다. 그렇다고 난잡하진 않다. 영화는 1에서 10으로 이어지는 서술을 탈피하면서 좀 더 유연한 소통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우발적 총기사고가 국제적 분쟁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것이 가족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각기 다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우리가 멀티탭 브라우징으로 웹 서핑을 하듯, 서로 조금씩의 인과관계를 가지고 엮어져 있다. 이 영화에서는 공통적으로 총기와 폭력, 의사소통의 단절, 편견, 고독이 담긴 여러 편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에서 보듯이, 먼 중동의 이야기일지라도 도쿄에 있는 한 가장에게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국경도 나눠져 있고, 수화조차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지구 저편의 사건은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그 어떤 사건에 처한 주인공도 소중한 사람의 안부는 확인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바벨탑이 무너지기 전, 모두 하나였던 '우리'에게로 돌아가려는 듯이 말이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운 사람들이 떠올랐고, 사랑이 하고 싶어졌고, 그 순간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이 정말로 기뻤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시대에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모든 소중한 것에 붙이는 온갖 어휘와 미사여구가 그 한계에 다다랐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삶에 소중한 건, 세련된 어휘와 쿨한 문체로 꾸며낸 광고카피같은 사랑이 아닌, 볼을 타고 흐르고 입술을 타고 흐르는, 결국은 우리 이 얇은 피부조직 아래를 흐르고 있는 따뜻한 그 '무엇'이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이 피부아래가 따뜻하기에 중동의 핫산이든, 일본의 치에코이든, 미국의 데비이든 모두가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