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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07

중요한 것은 눈과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그 무엇 - Babel

바벨은 옛날 신에게 도전하던 인간의 상징이었고, 그 탑이 무너지면서 인간사회에는 차이라는 것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내가 듣고 자란 내용이다. 내가 잘못 알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 내가 이해한 내용은 그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갖고 있는 고민은 거의 대부분이, 다른 것을 나에게 익숙하게 만들고자 할 때 발생한다. 언어의 차이와 자원의 차이, 그리고 어김 없이 이어지는 폭력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조금씩 잘라서 엮어두었다. 그렇다고 난잡하진 않다. 영화는 1에서 10으로 이어지는 서술을 탈피하면서 좀 더 유연한 소통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우발적 총기사고가 국제적 분쟁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것이 가족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각기 다른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우리가 멀티탭 브라우징으로 웹 서핑을 하듯, 서로 조금씩의 인과관계를 가지고 엮어져 있다.

이 영화에서는 공통적으로 총기와 폭력, 의사소통의 단절, 편견, 고독이 담긴 여러 편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에서 보듯이, 먼 중동의 이야기일지라도 도쿄에 있는 한 가장에게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국경도 나눠져 있고, 수화조차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지구 저편의 사건은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그 어떤 사건에 처한 주인공도 소중한 사람의 안부는 확인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바벨탑이 무너지기 전, 모두 하나였던 '우리'에게로 돌아가려는 듯이 말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운 사람들이 떠올랐고, 사랑이 하고 싶어졌고, 그 순간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이 정말로 기뻤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시대에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모든 소중한 것에 붙이는 온갖 어휘와 미사여구가 그 한계에 다다랐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삶에 소중한 건, 세련된 어휘와 쿨한 문체로 꾸며낸 광고카피같은 사랑이 아닌, 볼을 타고 흐르고 입술을 타고 흐르는, 결국은 우리 이 얇은 피부조직 아래를 흐르고 있는 따뜻한 그 '무엇'이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이 피부아래가 따뜻하기에 중동의 핫산이든, 일본의 치에코이든, 미국의 데비이든 모두가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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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잎 시절의 한국의 모던 록들을 다시 들으며

한 때, 테잎을 정리하다가, 정말 좋아했던 곡들인데, CD로 절판되어 속상해서 버리지도 못하고 한 구석에 고이 모셔놓았던 적이 있었다.

한 동안 중고음반 스토어들을 돌아다니며 구해보기도 했었던 그런 앨범들이, 벅스에서 무제한 Free-DRM정책으로 다시금 빛을 보게 되었다. 친구와 메신저로 실시간으로 잊고 있던 뮤지션들의 앨범들을 발굴하다 보니 새롭게 들리는 곡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 때는 우리 나라 록음악의 황금기였지 싶다.

1. 주주클럽 - 16/20
우리 나라에 모던 록이란 장르가 존재한 이유이기도 한 앨범이다. 표절논쟁으로 좀 잡음이 일긴 했지만, 이 앨범의 주옥같은 멜로디와 알싸한 연주, 그리고 감성적인 가사가 돋보이는데 문제는 지금 들어도 손색없는 사운드 이다. 주주클럽은 홍콩계 사장이 있던 록 레코드(Rock Records)를 통해 데뷔해서 채널V등에서도 홍보한 아시아와이드(Asianwide)한 밴드였다. 주다인의 꺾기 창법은 앨라니스 모리셋과 돌로레스 오리어던 그 어디쯤에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노래를 잘 부르는 보컬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 한 곡을 들어봐야 한다면, 카디건스의 카니발의 표절논란이 있었던 내가 너를 원할때도 괜찮지만, "너 정말 너무 고마워"는 꼭 들어봤으면 하는 곡이다.

2. 불독맨션 - 춘천가는 기차
김현철의 오리지널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 리메이크 넘버이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심정을 아찔하게 아름다운 연주에 담아내었다. 특히 후렴구의 환상적인 연주는 그런 감성을 배가시켜준다. 적절히 흥겨운 템포도 일품이다.

3. 이승환 - 붉은 낙타
자기성찰적인 가사와 그에 걸맞는 음색으로 불러낸 수작으로, 지금 들어도 이 사운드를 따라갈 곡이 없을 정도이다. 이승환의 팬은 아니지만 이승환의 음악가적 고민이 절실히 드러나는 곡이다. 이 곡은 당시 앨라니스 모리셋의 음악과 창법 등을 벤치마킹해 프로듀싱한 곡으로 유희열이 참여했다. 5집 윤회에 오리지널 넘버가 수록된 후 4~5가지 정도의 버전이 있는데, 그 중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버전이 두 곡이다. 오리지널이 있고, 후에 베스트 앨범 "Serious Day"에 다시 믹싱된 곡인데, 오리지널 버전이 훨씬 보컬면이나 편곡면에서 더 좋다.

4. 챠우챠우
델리 스파이스가 만든, 우리 나라 록역사상 불후의 명곡. 개인적으로는 델리 스파이스는 아직 이 노래를 뛰어넘는 노래를 만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영화 후아유에는 영화음악을 맡은 방준석씨가 리메이크한 걸로 추정되는 이준우 보컬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원곡이 더 좋지만 이준우 버전도 괜찮다

5. 김태욱(태우기) 2집 - Toscani Learns To Rock
지금은 채시라의 남편이자, 웨딩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예전엔 록스타였다. 개꿈,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등의 히트곡을 부른 김태욱의 이 앨범은 베네통의 충격적인 컨셉의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토스카니의 사진을 토대로 여러 노래를 만들어내었다. 헤븐이란 곡으로도 유명한 이 앨범은 비주얼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독특한 앨범으로 지금 들어도 사운드가 탄탄하며, 가사도 정말 훌륭하며 음악은 더할나위 없이 좋다. "돈 벌면 우리 엄마 다 줄래"라는 유치한듯한 제목의 이 노래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중에 가장 감동적이고 세련된 가사가 일품인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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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unt Mary

마이 앤트 메리(My Aunt Mary)의 "Just Pop"이란 앨범은 한창 춤을 추는 듯한 클럽의, 사람들의 허리정도 높이를 사진으로 찍은 사진을 커버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 소란스럽지도 않고, 아주 필요한 만큼의 경쾌함이 묻어나는, "흥겨운 한 때" 정도의 이 사진을 보는 순간부터 이 앨범이 끝까지 돌아가는 동안 머리 속에 든 말 한마디는 바로 "Just Pop"이었습니다.

마이 앤트 메리는 "Just Pop"이란 말을 쓴 이유를, 자신들에게 자꾸 붙는 "브릿팝"이란 수식어가 싫어서라고 했다고 합니다. 기타와 베이스를 필두로한 밴드의 포메이션에 약간의 훅이 들어간 일렉트릭 기타의 음악을 우리는 록큰롤이라 불러왔고, 어떤 특정 장르에 편입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던록'이니 하는 그럴듯한 수식어만 찾아 왔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팝"이란 말에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부는 미국산 노래들을 부르는 '업계'나름대로의 용어도 있어왔으니까요. 아주 대중적이고,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노래 자체를 즐겁게 들을 수 있는 "팝송"이란 말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팝송"들을 잃고 살게 된 것일까요?
저는 "언니네 이발관"의 '꿈의 팝송'이란 앨범과 후에 나온 '순간을 믿어요'란 앨범에 수록된 새로운 버전의 '꿈의 팝송'을 듣고는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온 "팝송"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코드의 진행이나 사운드가 얼마나 맥없는가, 보컬의 성량이 부족하다는 둥, 앨범커버가 유치하다는 둥, 록의 정신이 부족하다는 등의 억지를 피해 즐겁고 경쾌하게 흥얼거리며 춤도 추고 따라 부를 수 있고, 학교 밴드들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친구들과 단촐하게 카피도 할 수 있는 그런 음악들에 우리는 너무 인색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팝"이란 단어와, 그런 스타일의 음악에 대한 감각을 재정립하고 나면, 그 후에 따라오는 드림팝이니 기타팝이니 하는 또 다른 골치아픈 말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죠.

프랑스 출신의 밴드 "Air"의 음반에는 '일렉트로닉 뮤직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라는 평가가 붙어 있습니다. 그 말을 한 마디로 바꾸면, '낭만적인 팝 밴드'쯤 될까요? Air의 음악은 부드러우면서 물러터지지 않고, 감성을 적절히 자극하면서 온몸을 감싸는 비트로 아주 편하고 우아하게 다가옵니다. 그들의 음악은 철저한 전자음으로 꾸며진 음악도 아니고, 기타도 딸랑거리며, 복고적인 드럼비트도 섞여 나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몽환적인 신디사이저 음은 오히려 목가적으로 느껴질 정도이죠. 위키피디어(Wikipedia.org)라는 인터넷 공개형 백과사전에는 "드림팝"밴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꿈의 팝송"인 셈이죠.

카디건스(The Cardigans)의 음악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알려졌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모던 록"이란 장르로 불렸습니다. 모던 록이란 장르만큼 실체가 애매한 장르도 드물죠. 빌보드 차트에서 메탈리카 같은 원조 밴드들의 음악을 "메인스트림"으로 분류하고, 토닉이나 써드 아이 블라인드 류의 음악을 "모던 록"으로 분류했지만, 그 두 차트가 서로 섞이는 일도 다분했었죠. 카디건스는 그야말로 팝 밴드 입니다. 특히 "Lovefool"은 밴드가 소박하게 연주한 하우스 뮤직이죠. 어떤 이들은 재즈에 뿌리를 두었다고 재즈와 연관지으려 하지만, 그러기에는 또 수 많은 재즈의 변종 장르를 만들어내야 할 겁니다. 단지, 이들의 음악과 앨라니스 모리셋에 영향을 받은 국내의 여러 여성보컬들 때문에 카디건스를 '모던 록'이란 범위에 한정지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쯤돼면, 그 동안 Tahiti80의 음악을 들어오신 팬들이라면, 자신있게 그들의 음악에 "꿈의 팝송"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셔도 될 것입니다. 로맨틱한 멜로디에 매력적인 사운드들에 밴드 퍼포먼스와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들이 알맞게 버무려진 프랑스 출신의 이 밴드의 음악을 쉽게 설명한 만한 그 어떤 음악 스타일도 필요치 않습니다. "단지 팝송"하나면 되는 것이죠.

이 글을 읽는 내내, 그래 그러고 보니...하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곡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건 일렉트로닉 얼터너티브 펑크일까? 애시드 재지 하우스일까? 하는 등의 변종 장르로 정신없게 만드시기 싫으실겁니다. 그럴 땐 "Just Pop"이라고 외쳐보세요. 너무 노래가 좋다구요? 그럴 땐 "꿈의 팝송"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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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M-Free에의 험난한 여정

스티브 잡스의  "Thoughts on Music"이라는 글이
애플 홈페이지(http://www.apple.com/hotnews/thoughtsonmusic/)에
등록된지 만 하루만에 벅스에서는 월 4천원의 무제한에 DRM-Free의 곡들을 다운받을 수 있는 서비스(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242&PCode=0070&DataID=200702071611002156)를 시작했다.

빌게이츠도 한 때 어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폐쇄적인 DRM정책에 관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CD를 리핑에서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권장하기도 했었다. 스티브 잡스의 생각도 비슷하다. 지금의 FairPlay DRM은 음반사와의 계약상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고, 가장 이상적인 것은 DRM이 없어지는 것이리라.

DRM만큼 시대를 역행하는 기술도 없을 것이다. 그 어느떄보다 시공을 초월한 컨텐츠의 유통이 가능한 지금 시대에 DRM은 그런 유통흐름에 문을 달아서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저작권자의 이익과 배포회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DRM이 사용되지만 언제나, 그 DRM을 해제하는 노력을 계속되어 왔다.

DRM이 해제되면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곡들이 다시금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재배포가 되기 때문에 음반사들은 상당히 꺼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FairPlay를 해제하는 유틸리티나 쥬크온 같은 국내 사이트에서 DRM을 제거하는 방법 같은 것이 인터넷을 떠돌기도 했다. 그리고, 벅스는 과감히 DRM-Free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 동안 30일기간 제한이 걸린 음원이 한 달에 5,000원에 대여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벅스는 4,000원에 무제한 다운로드를 시행해 버렸다. 온라인 판매방식의 성공적인 사례가 될 지, 또 한차례의 잡음이 생길진 모르지만 어쨌든 음악애호가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온라인 컨텐츠 유통은, DRM과 포맷에 대한 그 어떤 장벽도 없는 컨텐츠들이 자유롭게 유통돼고, 그 컨텐츠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제작 사전에 펀딩을 지원하거나 컨텐츠 이용후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방식으로 유통되는 것이다. 돈 낼 사람은 어떻게든 내게 되어 있을테니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지금의 소심함이 문제일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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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우리소설은 변하고 있을까

지난 주 한겨레21의 커버를 장식한 기사
"천만개의 공감 제3의 니혼 뉴에이브"
http://www.hani.co.kr/section-021003000/2007/01/021003000200701260645030.html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할 이야기였다. 내가 책을 활발히 읽기 시작한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으면서 부터였다. 내가 고민하던 그 시기를, 앞 서 경험한 작가가 아주 심플하고 짧은 한 편의 소설로 이끌어준 것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아주 명쾌한 말로.
최근에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가끔 동경만경 같은 너무 기획한 티가 나는 소설도 있지만) '자신답게' 사는 것에 무한한 힘을 실어준다. 지금 '자신답게'살기에는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자신을 지키는 어떤 조용한 시위같은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최근에는 한국 작가의 소설들을 많이 찾아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제일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었던 소설은 일본의 소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전공이 영문학이라 영미소설을 읽을 기회가(읽어야 할 기회가) 많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간 소설은 스우 타운센트의 "비밀일기", "성장의 아픔"의 아드리안 모올 시리즈와 노르웨이의 숲 영어판 밖에 없는 것 같다. 영미소설은 어느 순간 사람을 질리게 하는 지적 과시나 디테일의 낭비 같은 게 드러나기 때문에 소설을 읽기가 부담스럽다. 일본의 소설은 정말 경쾌하면서도 심플하게 그러면서도 녹록치 않은 현실을 이야기한다. 얼터너티브 록 음악같은 느낌을 준다. 신나고 경쾌하면서도 시니컬한 코드의 진행처럼...

한겨레21의 기사는 왜 일본소설이 인기가 있고, 어떤 일본소설이 인기가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이는, 이미 문학이 '소설을 파는' 산업으로 넘어간, 음악이나 영화와 다를바 없는 시대에 우리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반성이자, 대안의 제시이다.
우리 나라의 작가들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 댓가는 참혹하다. 고시보다 어렵다는 등단을 통과해야 하고, 글만 써서는 기본적으로 먹고 살기 조차 힘들다. 어떤 독자들은 그러한 팍팍한 삶에 거부감을 느낀 독자들이 일본 소설쪽으로 많이들 옮겨간다고도 한다.

나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가'란 참신한 문체로 이야기를 하되, 진실을 말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삶을 어떠한 틀에 가두지 않는 자유로움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내가 '무라카미 류'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 내용이다.

책이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안의 글이 읽을 흥미를 주면서, 책임감을 담고 있어야 한다. 김언수씨가 자신의 책에서 밝힌 "귀싸대기 맞을 각오 되어있다."정도의 마인드라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건과 다양한 인물상이 나오는 최근의 소설에는, 참신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치기어린 드라마 캐릭터 같은 인공적인 감성이 너무 많다. 소설은 상상력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그런 상상력에 도취되어 개연성 없는 말만 늘어놓고는 "이건 새로운 거거든..."이란 말로 포장하는 식의.

요즘은 새로운 작가들과 그들의 새로운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정말 설레는 독자의 마음으로 기쁘게 읽고 있다. 나의 분류기준에 의한 "쓰레기"들이 많이 없어지고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소설가들은 좀 특별한 삶을 사는, 아무리 평범한 삶이라도 특별하게 말할 수 있는 뻔뻔함도 갖추고, 책들은 언제나 들고 다니며 읽기 좋게 세련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한 유통체계로 발매되었으면 한다. 가장 최첨단의 문화와 교양을 쌓기위해 패션지를 사봐야하는 시대는 지날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아울러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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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 그 곳을 떠나지 않으면 나중에는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불안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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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밝은세상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읽고 나면 주말아침 햇빛에 눈이 떠져, 옆을 더듬어보면 사랑하는 누군가가 누워있는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햇빛이 조용히 비치는 아침 그 나른하고 소중한 어깨에 입을 맞추고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면, 둘 중 누군가가 입을 열기 시작한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던가? 내가 살던 옛날 집에는 유령이 나오던 별채가 있었거든..."

요시다 슈이치의 나가사키는 이전 소설들보다 훨씬 굵직한 뼈대를 설정한다. 나가사키의 조직폭력배 가족을 배경으로 슌의 성장과 주변 가족의 흥망사 같은 것을 보여준다. 이전의 소설들보다는 훨씬 스토리의 전개에 초점을 두었고, 매순간 결단력을 높였다. 야쿠자 가족출신의 슌은 별채에 산다는 유령의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다. 어느 순간 유령따위를 믿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고는 유령 이야기는 자신만이 아는 것으로 덮어두게 된다. 나가사키는 그런 슌의 성장을 여러 사건들과 함께 조용히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까지도 유령의 목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슌이라는 소년이 성장할 때까지의 '역사'를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어조로 표현한 나가사키를 읽고 있으면, 언젠가는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에 대한 반항과, 다시금 고향에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향수같은 것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속에 언뜻 나오는, 젊은 시절에 그 곳을 떠나지 않으면 나중에는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불안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떠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보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퀴어한 요소를, '난 퀴어물 작가야.'라고 선언하지는 않지만, 아주 교묘하면서도 뻔뻔하게 소설속에 묻어둔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은 무리하지 않게 아니면 좀 더 특이한 묘사나 기법으로 해석하게끔 돌려놓는다. 나가사키는 문신으로 온 몸을 감싼 덩치 큰 남성육체에 대한 묘사,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가 그 육체를 보는 시선, 데쓰야의 작품 등에서 그러한 요소를 드러낸다.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게이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나가사키란 '벗어나야 하지만, 벗어나기에는 두려운.' 가족에 대한 애정과 경계심을 표현한다. 슌은 자신이 사랑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별채에 머물러 있는한, 결국 목을 메단 그 유령처럼 되어버릴 운명을 타고 났다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러한 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느냐 그 정체성 안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문제의 해결은 엉뚱하게도 별채의 화재로 결론맺어지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나가사키같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령이 나온다는 그 별채같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수치심과 애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침대 및의 어릴 때 편지같은 걸 넣어둔 구두상자 같은 그런 것들 말이다. 누군가 이 책을 읽는다면 되도록 여러번 읽어보길 바란다. 밤에 침대에 누워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있었던 일 중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일들 같은 것의 미스테리가 상당히 해소될 수도 있고, 뒤늦게 찾아온 아련함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탁월한 점은, 우리 모두가 않고 있는 "안에 머물 것인가, 밖으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모든 중대한 사안을, 게으른 주말 아침 애인의 애무와도 같은 부드럽고 달콤한 어조로, 작가는 속삭임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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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WiiJ

Wii에서 채택한 혁신적인 리모트인 Wiimote를 처음 봤을 때, 이건 더 이상 단순한 게임 컨트롤러가 아니었다. 누구든 마음막 먹는다면 전혀 새로운 개념의 컨트롤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기계인 것이다. 나는 만일 저 기계가 컴퓨터에 연결되고 MIDI컨트롤러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면 엄청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타워즈를 테마로 한 파티 같은 데서 위모트를 휘두르며 컨트롤링을 한다면, 같은 생각을 하면서...


DJ !(쉬트트 원으로 불러야 한단다. Shift+1을 눌러보면 왜인지 이유는 알것이다.)이 만들어낸 이 방법은 http://djwiij.com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Wii의 인터페이스는 게임기를 떠나서도 혁신적이라는 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누군들 매일 텔레비전에 이용하는 리모콘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꿈꾸지 않았을까? 곧 국내 클럽에서도 Wiimote를 휘두르는 DJ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Wiimote의 위치 센서와 버튼을 이용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연주와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게임기로 하는 DJing을 유치하다고 느껴질지는 모를 일이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DJ인 '빠리에서 온 드미트리(Dimitri From Paris)'의 최초의 DJing은 어릴 적 침실에서 더블데크 테이프 플레이어로 한 믹싱이었다고 한다. 매쉬업(Mash-up)은 특별한 것이 아닌 것에서 특별한 걸 만들어 내는,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을 바꿔온 발명과 발견이라고 배워오던 것들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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