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가량 여행을 했다. 앞으로의 일을 결정하기 위한 여행이라고 했지만, 유년시절을 삼개월가량 더 유예하기 위한 여행으로 끝나버린 듯 하다.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3개월을 있었고, 중간에 동유럽의 몇 몇 도시를 돌아봤다. 나는 언젠가 어디론가 노트북을 들고 떠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첫번째 맥북으로 이렇다할 이야기를 쓰지 못했고, 두 번째 맥북 프로를 들고 다니면서도 그렇게 좋은 이야기는 떠올리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파산상태의 일본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향했다. 2박3일의 짧은 도쿄여행은 앞으로 내가 한국에 남을 것인가, 다른 곳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혼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도쿄를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항공편의 연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국적의 다양한 것들이 혼재하는 초현실(surreal)적인 공간을 경험해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 만난,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은 언젠가 도쿄를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동양의 작은 섬나라의 수도이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판타지 때문이라고. 나도 이러한 판타지를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일본에서 10개월 가량 유학을 했던 친구 한 명은 그 환상이 무참히 깨질 수 있음을 조심히 경고 했다.
적어도 내가 본 도쿄는 거대한 팝아트 작품같은 도시였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특별한 것들을 친절히 복제하여 완벽한 분류법으로 전시해 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도쿄에 존재하는 캠벨 수프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캠벨 수프가 아니라 앤디 워홀이 복제한 캠벨 수프의 실크스크린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진짜보다 더 정교하고 더 비싸다.
도쿄에서 돌아온 후 나는 내 경험을 확신할 수 없었다. 음 오모테산도의 트렌디한 샵들을 거닐고, 긴자의 애버크롬비 앤 피치 플래그십 스토어를 가봤어... 라는 식의 간단한 여행기 같은 말은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도쿄란 곳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3개월간의 피렌체 생활의 경험도 특별한 의미로 정리해내지 못했다.
도쿄 펄프 픽션은 이런 초현실적인 도쿄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책이다. 도쿄의 곳곳을 여행한 작가가 경험을 거대한 원심분리기에 넣고 뽑아낸 키워드들을 다시금 재조합해 낸 것 같은 책이다. 그러니까 도쿄에 대한 성분이나 맛, 향취는 있지만 결국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쿄는 아닌 것이다. 우리가 도쿄를 통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의 사이에 있는, 도쿄를 유령처럼 떠 도는 분위기나 도쿄를 떠 도는 의미의 덩어리들을 글로 옮긴 것 같다. 고양이탐정이나 상상 도둑의 이야기를 따라 복잡하게 얽힌 도쿄 도내의 전철노선도를 따라가듯 작가가 안내하는 도쿄 여행을 해볼 수 있다.
대부분의 도쿄 여행이 오다이바를 보러 가기 위해 모노레일을 타고, 회전초밥집을 갔다 온 이야기로 표현된다면, 허름한 헌책방에서 누가 출판한지도 모를 기묘한 이야기가 담긴 도쿄 이야기로 표현된 이 책은 그래서 도쿄 펄프 픽션이란 이름이 붙은 것 같다. B급으로 뒤틀린 대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상에 대한 이미지와 다른 것 처럼, 우리가 생각하던 도쿄와 많이 다른 펄프 픽션 속의 도쿄를 만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나 도쿄 기담집의 영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처음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은 글이었지만,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록 작가의 이야기 형식이 마음에 들었다. 여행기에 사실확인을 하기 귀찮아서 이런 형식을 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작가는 실제 도쿄의 이야기를 픽션안에 녹여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도시를 경험하고 자료를 수집했던 것 같다. 이따금 등장하는 사진은 그러한 믿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나는 이 책의 방식이 가장 도쿄를 잘 설명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는 이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도시가 되어 버린다. 비록, 내가 본 도쿄는 음울하고, 낡고, 더럽고, 매력이 없는 껍데기만 남은 이미지였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놓쳤던 풍경 사이 사이를 떠도는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한다는 게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도쿄에서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것은 로뽄기 힐즈의 전망대 같은 것이 아니라, 우에노역 근처, 신주쿠의 뒷골목 같은 데서 꼭꼭 숨어 있는 가상에 가까운 도쿄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