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학교 가는 날을 줄이려는 게으름 때문에 나의 주말은 목요일 오후 세시에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은, 왠지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필요했다. 사실은, 지갑속에 들어 있던 르네 마그리트 입장권 할인 쿠폰이 너덜거리며 2일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여러 아티스트들처럼 그냥 보내기가 께름직했다.
다음주 월요일에 배울 중국 소설가 유호와의 To Live[footnote]세계문학 과목에 포함된 작품이다.[/footnote]를 손에 들고 273번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고려대와 대학로를 빙빙돌아 종로를 거쳐 신촌까지 가는 굉장히 하드코어한 버스이다. 외대, 경희대, 카이스트와, 고려대와 연대, 서강대, 이대, 홍대 등을 아우르는 학생들의 버스라는 말이지.
서울시립미술관 경복궁 분관에서 헤메이다가 정동극장 길을 따라 본관까지 걸어갔다.
그러니까 이렇게 무한루프를 도는 느낌이었다고 마그리트씨는 말했다.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내가 자주 꾸는 꿈을 그래픽으로 구현해 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모두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무의식을 한 번 경험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없어진다. 이른테면, 꿈 속에서 어느덧 자신의 손과 발이 비정상적인 비례로 커져버린 걸 때닫는다거나, 휴양지의 싸구려 호텔의 복도로 보이는 곳에서 문득 이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깨닫고 울부짖으며 지하로 내려 가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해변에 가짜 태양이 떠 있는 그런 꿈 말이다. 식은땀이 흐르는 그런 꿈[footnote]프로이트나 자캉이라면 사양한다.[/footnote]은 오래도록 남는다. 나 같은 경우는 조금씩 버전을 달리해서 해마다 꾸는 꿈이기도 하다.
르네 마그리트는 그런 것에 대한 남다른 성찰이 있었던 듯 하다. 열심히 메모를 하면서 관람을 했지만, 결국 그림을 대할 때의 감정을 언어로 실어낼 자신은 도저히 없는 듯 하다. 벽에 적힌 그의 말 중에 그런 말이 있었다. 자신의 그림에서 어떤 전통적인 상식을 찾지 말라고, 그리고 언어는 이미지를 설명할 수 있지만, 이미지로 언어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지를 설명한 말은 그 언어를 의미한다, 그리고 또... 자신은 제목을 시처럼 짓는다고, 그래야 사람들은 뭔가를 생각하는 대신에 마법에 걸린 것 같은 신기한 감정을 얻는다고, 그리고, 자신은 사물의 표면이 주는 의미를 알아낼 수 있고, 그 아래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도 잘 알 수 있다... 뭐 그런 말들이었다. 물론,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말들이라 수첩에 빼곡히 적어왔지만 당분간 두고 두고 소화해봐야할 듯 하다.
내가 본 르네 마그리트는, 거장다운 솜씨로 그림을 정말 잘 그렸다는 것, 그의 아내인 조제트를 끔찍히 사랑했다는 것, 약간은 신경질적이지만 꽤 잘생긴 멋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항상 꿈에서 봐와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요상한(weird) 것들'을 생생하게 그림으로 표현해 주었다.
미술관에서 나오자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이지. 거기 온 사람들보다 더 쾌활한 우산들이 남부 이태리 생선도매상 좌판처럼 널려있었단 것이지.빗속을 뚫고 뛰어서 생전 처음 보는 시청별관의 미로를 따라 시청역에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집에 오는 이태원역에서부터 제일기획구간도 뛰었다.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엘 람블라 화이트 와인을 마셨더니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최근 보기 시작한 어글리 베티라는 텔레노벨라를 좀 보다가 몇일간 끌어 왔던 영화 가든 스테이트를 끝냈다. 문득, 이런 초현실 목요일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