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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0

거짓말 같은/잔인한 계절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만우절 거짓말 같이 세상을 떠난 배우 장국영에 대한 생각이 난다. 나는 장국영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저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거짓말 같은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나오는 영화를 제일 주의깊게 봤던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였다. 그 영화를 생각하면, 장국영이란 사람은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그를 생각하면 '연기'라는 것이 얼마나 멋진 예술인가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호텔 옥상을 올라가서 까마득한 저 아래를 내려다보고 뛰어내리는 것을 선택할 정도로 그에게 삶이란 굉장히 괴로운 것이었을까. 전작 이도공간에서 비슷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서, 손쉽게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선택한 방법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심이었을 것 같아서이다.

갑자기 죽음을 택한 최진영씨에 대한 기억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나 '스무살까지 살고 싶어요'의 오후에 눈을 따갑게 찌를듯한 선명한 슬픔의 장면들이 함께 기억이난다. 유난히 내가 기억하는 최진실과 최진영이란 두 배우의 무표정한 모습에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봄이 오는 대신 죽음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따뜻하고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쫓는 일상 대신에, 우리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주변의 현실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다. 언제나처럼 크게 동요하지 않으려 하지만, 폐에 밀려오는 짜고 차가운 바닷물에 고통스러워 하며 침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가끔 세상에는 이렇게 거짓말 같은 일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현실이라는 건 더욱 더 잔인한 것 같다.

언젠가 중국 작가 위화의 '인생'이라는 소설을 배웠던 때가 기억난다. 영문학 3학년의 수업이었던 그 때, 나는 소설에 대한 분석발표를 하면서, 전쟁을 겪는 와중에 아이들이 병원에 늦게 가게 되어 벙어리가 되거나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는 과도한 헌혈 때문에 죽는 모습을 가리켜 '한 가족의 슬픈 역사'가 아니라 '약자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제도의 모순'이라는 해석을 한 적이 있다. 과도한 해석이 아니냐는 학생들의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너무나도 손쉽게 슬퍼하고 운명으로 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뜻하지 않은 죽음들의 배경에는 무언가 일그러진 듯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성폭행 후 살해 당한 한 소녀의 이야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분노의 감정을 범인의 모든 것을 해부하면서 해소하려는 시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동네에 연고도 없던 사람이 어슬렁 거리던 빈 집이 많을 정도로 환경을 제대로 뒷받침 하지 못한 '재개발'이라는 이유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재개발'이라는 것에는 공정하지 못한 분배에 대한 결핍과 기회를 차지하려는 욕망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다.

이 잔인한 계절이 아마 여러 차례 반복될 것이다. 사실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산 사람은 살아야겠지만, 그 살아있는 사람들이 저런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사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 같다면, 아마도 이 모든 것을 거짓말처럼 만드는 일을 해야할 것이다. 무한히 분노하고 무한히 슬퍼하는 동안 소모적인 논쟁으로 망각이라는 안일한 선택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잔인한 계절이 왔다는 건 정말 거짓말 같다. 하지만, 거짓말이란 생각을 하게되면 잊을까 두렵다. 오늘은 거짓말을 하는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의 거짓말은 누군가가 다 대신해준 것 같다. 거짓말조차 하기 힘든 잔인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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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도시 2

경계도시2는 감독과의 대화에서 나온 우스개소리처럼, 홍콩 누와르 영화의 속편이 아니다. 국가보안법과 한 교수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갔던 청년 송두율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물결의 앞에 섰다. 단지, 그는 북한과 남한중의 한 장소를 선택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오히려 이러한 두 세계의 중심에서 매개역할을 하는 '경계인'이라는 존재로 남기를 희망했다. 그 덕분에 그는 한국을 오지 못하고 37여년간을 베를린이라는 '경계도시'에서 지내게 된다.

이 영화는 그런 송두율교수가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애쓰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의 소재는 굉장히 정치적이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굉장히 개인적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신념에 혼란스러워 하는 교수를 촬영하는 카메라(감독 혹은 화자)마저 혼란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가 보여줘야 할 것은 매우 간단한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촬영중에 송두율 교수의 이야기는 궤도를 이탈해 버리고 만다.

이 영화의 말미에 송두율 교수와 관련된 대부분의 혐의가 무혐의로 밝혀지고, 애초에 이런 혐의들조차 그가 한국이라는 사회에 다시 들어오기 위한 댓가를 위해 국적을 포기하고, 타협했던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37년동안 돌아오지 못한 땅을 밟았다가 다시금 묶인 몸이 되었다가 풀려난 것이다.

영화에서 송두율 교수의 두꺼운 안경 너머에는 시종일관 당혹감이 서려있다. 그가 생각했던 경계인이라는 개념을 포용할 만한 관용이 이 땅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새 이쪽 아니면 저쪽 혹은 제 3국이라는 선택을 강요하는 땅이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민주주의를 다시금 일으키기 위해 송두율 교수에게 타협을 강요하는 순간들이다. 물론, 송두율 교수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를 떠난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한 것의 결과이지만, 송두율 교수가 소중하게 간직한 경계인의 개념을 무참히 밟고 한 무리에 들억가게끔 희생을 요구하는 과정을 보고 있기에는 상당히 괴로웠다. 사상과 이념과 대의를 위해 개인의 감수성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은 북이든 남이든 몇십년 전이든 현재이든 변한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경계도시2는 내가 키우고 있던 당혹감과 혼란과 분노에 어느 정도의 방향을 잡아준 영화이다. 나라는 존재에서 얼마나 많은 껍질을 벗겨내야 진짜 나의 모습이 나올지. 이미 태어날 때 부터 다양한 페르소나를 내밀게 되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경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경계에서 이질적인 것들의 손을 같이 잡아주는 경계인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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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hol Street

동유럽 여행을 계획하다가 앤디 워홀 미술관이 슬로바키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사실은 꽤 오래전에 듣긴 했지만) 원래 계획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이라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워홀이라는 성은 원래 워홀라라는 체코슬로바키아 조상들이 물려준 성이다. 지금은 슬로바키아가 된 그곳의 거리 이름은 ‘워홀 거리’가 되었다.  약 160점 정도의 작품이 있다고 한다.  

http://www.region.sk/warhol/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도 또 다른 앤디 워홀 미술관이 있다.
http://www.warhol.org/

언젠가 미국 동부를 여행하려고 계획을 짰다가 앤디 워홀 미술관을 계획에 넣었었다. 하지만 그냥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남았고 그곳을 구경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번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바키아까지 6시간 가량 차로 달린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닌듯 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브라티슬라바의 테스코에서 캠벨 수프깡통을 구경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동유럽 여행은 작년 12월 말에 갔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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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ound out the other Andy Warhol museum in Slovakia during the eastern euro trip planning. It’s way out of route I’m taking so I’ll pass probably. The warhol was actually Warhola and the Warholas from former Checkoslovakia. Now the street in Slovakia named as “Warhol Street”. They have apox. 160 works of Andy Warhol’s.
http://www.region.sk/warhol/

Another museum is in Pittsburgh, PA
http://www.warhol.org/ 

I once tried to travel around the east side of US and the Andy Warhol museum was part of the trip. I just stayed in Bay Area so I didn’t get a chance to see that place.

This time, if I drive from Budapest to Slovak Andy Warhol museum for 6 hours, I might be able to get a chance to see it.

But I probably won’t.

I might find some cans of Campbell’s soup at Tesco in Bratisl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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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 201 스페셜 에디션

나도 내가 이렇게 속물적일 줄 몰랐다. 데뷔앨범 201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무리 로파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몽구스보다 더 한 로파이 사운드라, 거칠게 비트감이 강했다면 이럭저럭 들었겠지만 계속해서 어린시절 저음질의 리얼미디어 파일로 듣던 음악들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이번에 리마스터링이 되고 새롭게 발매된 스페셜 에디션을 든는 순간…

나는 왜 이 뮤지션의 음악을 안 듣고 있었는지,
처음에 201을 들었을 때 작용한 내 편견을 탓하고 싶다.

특히 요즘은 이렇게 산산히 부서지는 파도같이 뿌옇고 아름다운 신스음과 그 사이를 가르는 듯한 애시드한 기타 연주들이 들어간 음악들이 많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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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IT

아이폰의 국내 발매는 일종의 사건이었지만 아이패드의 경우는 아무래도 더 굉장한 사건이 될 거 같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아이패드를 기다리는 사용자들보다 관련 기업들이 더 빨리 느낀듯 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한국의 기업들은 아이패드라는 기기의 특징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듯 하다.

아이패드는 모바일 OS로 구동되는 통신형  디스플레이 기기로 정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걸로 즐길 수 있는 건 거의 무한대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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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의 끝 (셔터아일랜드)

주의 : 셔터 아일랜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개를 헤치고 다가오는 배 한 척에서 계속해서 구토를 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춰주는 첫 장면 부터

아 그러니까 사건을 수사한다는 저 디카프리오가 어떻게 언제 미쳤는지 밝혀지는 게 관건이겠군…

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궤뚫는 고립된 섬에서 사라진 정신병자(혹은 살인마)를 쫓는 과정은 클리셰에 가까울 정도로 장르에 충실한 기법을 보인다. 이따금 주인공을 감싸는 환영은 매우 아름답게 영상이 만들어져서 거짓말로 두기에는 좀 아까운 편이다.

사실은 뭔가 굉장한 것을 기대하고 왔다가 적잖이 실망하고 가는 관객들을 붙잡고 외치고 싶었던 것이 있다. 평범한 망상을 다룬 스릴러라면 나오지 않았을법한 장면이다. 절벽에서 다시 올라온 주인공이 차에 얻어타게면서 나누는 대화에 이 영화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대목이 나온다.

만일에 내가 지금 당신 눈을 물어 뜯는다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거요.
어디 한 번 해보시지 내가 가만히 있나(Give it a try)

주인공을 셔터 아일랜드란 음모 가득한 섬에서 정신병자로 만들어 평생을 유령처럼 지내게 하려는 조작극일지, 정신이상 치유의 단서조차 보이지 않는 주인공을 위한 열과 성을 다한 신종 치료법이었는지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그냥 반전을 위한 스릴러 치고는 진행이 매우 차분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친절한 편이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인공의 정신 상태가 아닌, 눈을 물어뜯으려는 폭력에 대한 태도에 관한 영화인 듯 하다. 우리의 정신이 똑바르다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는, 우리 뇌의 밖에 있는 사람들인지 우리의 뇌인지 하는 것이다. 설사 누군가 눈에 송곳을 밀어넣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를 믿는 선택을 해야한다.

정신이상이란 단골 소재를 가지고 아주 고전적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영화가 던지는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단지, 내가 미쳤다고만 인정한다고, 뇟속을 송곳으로 휘젓지 않는다고, 그게 과연 끝일까. 한 개인의 삶에서 자신의 머릿 속에 있는 세계와 주변을 둘러싼 세계 사이의 균형은 어느 정도여야 맞는 것일까. 나는 '안에 머누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될 때,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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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법정스님의 책은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를 때, 엄마 책장에서 꺼내 읽은 무소유가 처음이었다. 우리엄마는 문학소녀를 꿈꾸셨던 분이라 집에는 책장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엄마 것 밖에 없었다. 엄마는 글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보니 둘째 아들이 책을 꺼내서 읽고 있어서 소름이 끼치셨다고 하던 당신은 그래서 아들 손을 잡고 같이 책을 사러 다니셨다.

무소유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책일 것이다. 범우문고 포켓판으로 샀던 책은 한자로 쓰여있던 제목을 몇 번이고 엄마한테 물어보고 실제로 읽기 까지는 몇 년이 지났던 것 같다. 학교 교과서에 법정스님의 글이 실리고는 나는 '수필'이라는 장르를 어렴풋이 깨우쳐갈 때 즘 무소유를 읽었던 것 같다.

아마 그 나이는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경제의 프레임워크 안에서 구현될 만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너무나도 서러운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학생들 사이의 빈부격차는 누군가가 DSLR을 들고 누구는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문제보다 더 어마어마하다. 이를테면, 학생들은 똑같이 수업에 들어가 비슷한 시간을 서로 같이 보내는데, 누군가는 브랜드 가방을 달마다 바꾸고, 누군가는 형이 쓰던 가방을 사정사정해서 받아쓰는 엄청난 격차 같은 이야기이다.

무소유는 그런 시절에 정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서 같이 순환하는 존재인데, 어찌감히 자연에서 빌려온 것들에 천박하게 영역표시를 한단 말인가. 금방이라도 법정스님의 호된 죽비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웃긴 것은 당시 무소유 책도 표지가 마음에 드는 범우문고 포켓판을 또 사느라 서점을 몇 군데 더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집착하려하는 어리석은 우리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아주 섬세하고 자상한 필체로 가르쳐준 분이시다. 적어도 나는 항상 그렇게 느꼈다. 사춘기를 지나고(아직 끝나지 않은 것도 같다.) 세상에 적잖이 냉소적이 되어가면서도 "흥, 그런 늙은이 따위의 고리타분한..."이란 말을 내뱉을 것 같은 반항기를 가슴에 품으면서도 법정 스님의 저서를 어떤 기회로든 읽게 되면, 학교 다닐 때 가끔씩 느낀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 나의 어리석음을 겸연쩍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법정 스님에 대한 글을 읽은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여행때 방치한 화초 이야기를 통해 집착을 버리라는 이야기와 많으신 나이에도 산에 홀로 살 곳을 지어서 올라가신 이야기를 '아름다운 마무리'에 밝혀 놓으신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에는 그 산중에서 홀로 들으신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다.
첫째 이야기는 화초를 아이 돌보듯 하시는 자상한 스님의 이야기이고, 두번째 이야기는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두번째 이야기는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했다.
 윤광준의 책 "소리의 황홀"에 보면 법정스님은 대단한 오디오파일(Audiophile)로 남다른 감각이 있으셨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법정 스님은 혼자 적막한 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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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광고

나쁘다는 말이 정말 나쁘게 쓰이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나쁘다'는 말, 특히 영어 단어 bad를 배에에에에드라고 하듯이 길게 내뺴서 말한다면 도발적이고 신선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나쁜 광고는 정말 나쁜 광고를 예로 들 생각이다.
광고는 물건을 팔고 기업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수단이다. 이론에 게으른 나로서는 뭔가 쿨한 예를 들고 싶지만, 기억나는 거라고는 작년에 읽다가 실패한 오길비의 "광고에 대해..."라는 책이다. 지금은 거물급 광고 브랜드가 된 오길비의 책에는 '어떤 기교를 부리든 클라이언트의 물건을 잘 팔 수 있는' 광고의 기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나쁜 광고란, 존재 목적 자체가 아무래도 의문에 쌓인, 아주 단순한 '물건을 파는 역할'마저 못하는 광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체로 이런 광고들은 광고주에게 도발적인 이미지로 신선하게 어필하고 세상의 터부라 여기는 것들에 대한 억압을 해방했다고 자위하며 궁극적으로는 세계 유수 광고제에서 인정을 받고 유튜브나 트위터를 통해 영원토록 바이럴이 되고자 하는 욕심의 과잉이 부족한 실력과 신선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특히, 비판의 순간이 10초 이내로 와 닿는 광고들의 특성상 반응은 많이 다르지 않다.

"어?!"
또는
"우엑."

'우엑'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가끔 이렇게 역겨운 아이디어로 포장된 광고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을 하고자 처음 생각한 것은 한달 전쯤에 자주 가는 Ads of the world블로그에서 RSS로 배달된 광고 한 편 때문이었다. 가끔 친구들이 메신저로 멋진 광고 같은 걸 보내주거나 미니홈피에 올리는 게 부럽다면 여기 사이트를 가끔 둘러보면 더 멋진게 많을 것이다. 우선, 어린이들을 위한 초콜렛 광고를 하나 보겠다. Caribú Bitter라는 초콜렛 회사의 광고이며, 제목은 '카나리(Canari)이다. 페루에서 광고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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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링크 : Caribú Bitter: Canari

물론, 이 광고 제작을 위한 프리젠테이션은 내가 그 자리에 마치 있었던 것 처럼 상상이간다.
- 안토니오, 가장 사악한 존재가 누구라고 생각해요?
- 글쎼요, 글로리아... 오사마 빈 라덴?
(하하하...)
- 유감이지만, 당신의 감각 저질이에요 안토니오. 혹시 제가 조카딸인 실비아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요?
- 아, 전에 회사에 견학와서 보드마카를 먹을뻔한...
- 그런 일은... 없었어요. 하여간, 지난 주에 오빠 생일이라 식구들이 모였는데, 제가 새로 산 보테가 베네타 백이 없어진 거에요.
- 글로리아 그 가방 솔직히 별로였어요.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쨌든, 저는 울음이 터지기 직전까지 갔고 시누이에게는 해서는 안될 욕까지 내 뱉은 상태였죠. 그런데... 천진난만한 얼굴로 앉아있던 조카딸 실비아가 범인이었다구요. 그 조그마하고 통통한 볼을 발그레하게 만들고는 미소를 띄고 있었는데, 글쎄 자기 엄마 가방에다가 구겨서 넣어뒀더군요. 자기 인형인 힐다에게 주려고 했다나봐요.
- 글로리아... 그러니까 실비아가 의미하는 것은...
- 악마같은 아이들이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서 어두운 면을 이끌어 내는 거죠.
- 이봐요, 우리는 초콜렛을 팔야아 한다구요. 초콜렛의 어두운 면이라고 해봤자 카카오 함유량 밖에 더 있겠나고.
- 제 말이 그말이에요, 그 달콤한 미소를 지닌 아이들에게서 카카오같은 어두운 면을 이끌어 내자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보다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동생의 젓병에 쥐약을 탄다던가 하는...
- 글로리아!
- 갑자기 순진한 척 하기에요? 그런 뉴스가 인터넷에 뜨면 제일 먼저 보는 사람들 아니랄까봐... 아이들은 더 이상 착하고 귀여운 존재가 아니에요. 그 조그마한 머리에 어떤 사악한 것이 들어있는지 모를 언캐니(Uncanny)한 존재임을 강조하자구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카나리를 프라이팬에 올리기 위해 고기 가는 기계에 넣는 아이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동화속의 숲속같은 녹색의 아름다운 배경에 볼이 발그레한 소녀가 빨간 옷을 입고 노란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을 보여주고 금방이라도 즐겁게 지저귈 것 같은 카나리아 새를 갈아내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빛나는 카피는 "달콤한 저편에 있는 어두움".

나는 단호하게, 이 광고는 나쁜 광고의 전형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이 광고에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충성심 마저도 전혀 없고(초콜렛 광고에 무기를 든 아이를 출연시키다니), 비주얼이 풍기는 이미지에도 일관성이 없으며 무엇보다 충격적인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카피와 레이아웃이다. 만일,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고 싶었다면 좀 더 그로테스크한, 이를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컨셉의 비주얼에 좀 더 선명하고 공포스러운 타이포그래피의 카피를 쓰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크 초콜렛의 자극적인 특징에 대해서 '자극적인 이미지'만 연결을 했을 뿐이지, 초콜렛이 어떤 맛을 주고 어떤 경험을 선사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 자신의 아이디어에 도취되어 광고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결국 초콜렛은 아무도 먹지 않고 애꿎은 카나리아만 희생될법한 아이디어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런 터부시되는 개념의 것들을 가지고 만든 생각없는 나쁜 광고들이 정말이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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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링크 : 찾을 수 없음 Lotte - Chocolate와 Strawberry 시리즈

이 두편의 광고는 일본의 롯데에서 집행한 과자 광고로 갈색 과자를 깨물면 초콜렛이나 딸기맛 젤리등이 나오는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과자이다. 물론, 그 단순한 갈색의 과자안에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과자들에게는 노출증에 대한 수치심이 없다고 멋대로 판단한... 갑자기 동물들이 회사원같은 말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더 손발이 오그라드는 아이디어인 듯 하다.

광고가 좋다는 기준은 매우 모호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제품 이름만 이야기해서 대박이 나는가 하면, 블록버스터급 예산을 들여도 제품 판매에는 영향을 못 미치고 광고제 수상만 하는 광고도 있다. 하지만, 듀렉스의 최근 광고는 정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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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링크 :

비주얼에 대한 고민과 독창적 디자인, 타이포그래피의 심미적 배치 등은 별달리 신경을 못썼더라도, 인물을 구성하는 아무 재미없는 단어들의 배치도 그냥 좀 참아주더라도... 무슨 나뭇가지를 쌓은 듯한 건조한 체위의 묘사도 그렇다 치더라도... 이 재미없고, 무례하고... 효과도 없어 보이는 광고가 전세계적인 콘돔 브랜드인 듀렉스의 광고라는 게 참 아쉽고 한심하다. 중간에 자리잡은 듀렉스 로고를 중심으로 전부 다 다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광고이다. 여러 모로 따져볼 때 '나쁜 광고'이다.

해외 광고들은 기발하고 기존의 틀을 깨는 광고들이 인터넷을 통해 많이 소개 되기 때문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강조할 때 많이 사용되고는 한다. 아주 평범한 진리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정 반대되는 것을 제시하는' 유머의 법칙이 광고에도 아주 기본적으로 쓰인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이 응용되고 비틀어져서 새로운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창조해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요즘 들어 최악의 광고 및 마케팅 사례라고 생각되는, 손발이 오그라들던 "암검진은 몇 해에 몇 번"을 뮤지컬 식으로 외치던 공익광고보다 더한 나쁜광고이다.

그러니까 이 광고는 TTL시리즈를 답습해서 아무런 영양가가 없어 보였던 UTO광고보다 더 나쁜 광고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쓸만한 게 하나도 없는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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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이 넘치는 사회를 위해

출산을 장려하면 만사OK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건 정말 큰 오산이다.

우르과이의 장기기증 광고를 보면서 든 생각은 출산을 장려하는 방법보다는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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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 번역 : 누구나 생명의 기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장기기증을 하세요. (Anyone can give the miracle of life. Just be an organ donor. )
Advertising Agency: La diez, Montevideo, Uruguay
Creative Director: Pablo Alvarez
Art Directors: Pablo Alvarez, Natalia Maag
Copywriters: Pablo Alvarez, Samuel Liberman, German Kropman
Photographer: www.Love.com.uy
Productor: Javier Venerio, Rosana Navone
Published: February 2010

광고그래픽은 그렇게 화려한 편은 아니다. 캐릭터 설정과 컨셉은 출산과 여성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 딱 좋은 소재이다. 하지만, 장기기증이라는 행동을 숭고하게 보여주는 데는 나름 성공한 듯하다. 단지 티셔츠 속에 넣은 바가지 티가 너무 나는 것이 문제.

출산의 장려와 낙태반대의 문제를 보면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 정작 출산과 육아를 힘겹게 견뎌내야 할 어머니들에게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던져질 사회환경과 그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출산을 장려하는 데에는 고령화 사회를 우려해 젊은 아이들이 많은 사회를 만들자는 이상한 기획의도로 보여진다. 어쩌면 아이를 낳지 않는 건 범죄처럼 보일지도 모를 이상한 캠페인과 정책들로 가득한 나라에서의 아이들의 삶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있다. 내 학창시절을 생각해도 야간자율학습과 선생님들의 체벌과 학원폭력, 심지어는 다미선교회의 휴거설 같은 것도 내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 웃는 날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자고 유리조각이 든 상자안에 던져 넣을 수는 없지 않는가.

사회에서 넘치는 생명력이 그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믿는다면, 제발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실적 위주로 나무를 심는 행위같이 출산을 장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주변의 아이들이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약간은 버릇없이 자랄 수 있도록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신건강도 사회에서 잘 관리해서 아이들에게 해꼬지 하는 사람들의 손길도 막을 수 있게 하고, 대기업 이미지 광고 같은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동생같은 획일적인 가족관도 바꿔서 누구나 의지하고 뭉친다면 그걸로 괜찮아...라고 말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생명이 위급한 사람에게 기꺼이 장기를 내주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지만, 장기기증장려를 위해서 이렇게 아이디어를 값싸게 내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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