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샌프란시스코 파웰가 바트역 근처에 있는 메트레온에서 IMAX로 보게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대화를 빌리자면
We’ve never seen anything like this before.
(여러분, 이제껏 이런 걸 본 적이 없습니다.)
It’s whole new world baby, it’s whole new world!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구요, 새로운 세상이!)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워쇼스키 형제가 실사로 촬영하였다. 300이나 신시티처럼, 대부분을 그린스크린으로 촬영하여 CG와 합성을 거친 작품이다. 전형적인 헐리웃 엔터테인먼트물이지만, 매트릭스가 보여줬던 비쥬얼적 혁명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워쇼스키 형제의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영화의 스토리는 아주 단순하다. 레이서 가문의 착한 아들 스피드(둘이 연결해서 스피드 레이서라는 다소 뻔뻔한 작명센스!)는 자신을 방해하려는 거대 자본의 악랄함에 맞서 최고의 레이서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교통사고로 죽은 명드라이버인 형 렉스에 대한 애정도 듬뿍 들어있고, 비록 조그마하지만 화목한 분위기의 레이서 자동차회사를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 스피드를 돕는 레이서-X와 스피드를 도우려다가 이용하는 태조 토고칸(비)의 이야기도 곁들어진다. 원래 기획 자체를 아이들도 볼 수 있게끔 해서인지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을 함부로 만들지는 않았다. 스피드의 어린 시절부터의 꿈과 마지막 순간까지 감동의 레이싱까지 적절한 효과와 편집으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재미가 있게 만들었고, 여러 캐릭터가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아이들만 겨냥한 것처럼 과하게 부풀리지는 않았다. 트랜스포머같은 영화 때도 그랬고,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비쥬얼 뿐만이 아니라 정교한 플롯도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면이다.
이번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현란한 화면이다. 매트릭스에서 플로-모(Flow-mo)같은 사람이 보는 현실적인 시각이 아닌, 머릿 속에서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던 워쇼스키 형제는 이번 영화에서 물리적인 시각의 한계를 극복한 현재 기술이 전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용한다. 원색계열이나 네온 계열의 아주 화려한 색상을, 보기만 해도 눈이 아플정도로 빠른 화면 전개에 담아낸다. 특히 IMAX에서 본 화면은, 특히나 디지털 리마스터링이 잘 되어, 디지털 전환시 문제가 되는 잔상이 남는 문제도 없어서 인지 더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스피드 레이서는 '현실감 있는'효과를 넘어서, 생전 처음 보는 가상 레이싱을 '더욱 더 진짜처럼' 만들어 냈다. 또한 특징적인 것은 원작이 일본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인지, 중간 중간에 일본 망가나 저패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을만한 특징들(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 클립과 캐릭터들의 상상의 세계를 결합하기도 한다.)을 삽입한다. 캐릭터가 스토리 흐름상 정보성이 담긴 대사를 진행할 때 뒤로 흘러가는 영상이나, 일본 만화에서 액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스크린톤이나 선을 이용한 화면 효과(달리는 차에서 뛰어 내릴 때 주인공은 정지해 있고 배경으로는 선처럼 흘러가는 모습이 표현된다거나)나 프린트 된 만화에서 보여주는 칸전환(Panel Transition)을 적절히 이용한다.
이 영화가 흥행 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기 보다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영화 기술이 얼마나 발전해 있고, 연출하는 쪽에서는 이런 기술을 얼마나 이용할 의사가 있고, 얼마나 숙달되어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그 가치가 어마어마 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스피드 레이서는 그 동안, 그래픽이 현란한 화면(특히 레이싱 같이 빠른 화면전환을 요하는)에 익숙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를 구별할 것이고 일반화질과 HD화질을 구분하는 세대의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기술의 헛점을 보완하기 위해 해 왔던 여러 눈속임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머릿속의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재현해 내는 그래픽 기술의 역할까지 확고하게 만든 셈이다.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 게임 시리즈 중 3시리즈가 나왔을 때도 비슷한 흥분을 맛봤었다. 게임기 사상 1천만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기판가격에, 물결의 표현이나 뺨에 묻은 모래, 높낮이에 따라 몸을 구부리는 캐릭터의 표현 등 엄청난 기술의 진일보가 이루어졌었다. 1996년정도 였으니까 엄청나게 미래를 내다봤던 케이스가 아닌가 한다(4부터는 오히려 프로토타입 코드로 다운그레이드 한 뒤, 새롭게 최근 스타일의 그래픽으로 개발을 했다고 한다). 만일, 스피드 레이서가 과도한 그래픽과 비현실적 색감(아마 Blu-ray홈시어터 세트 판매장에서는 필수로 데몬스트레이션 할 것이다.)때문에 흥행을 못한다 하더라도, 스피드 레이서 이후의 CG를 이용하는 모든 영화는 이 영화를 따라하려고 하거나, 더 나은 퀄리티를 뽑아 내려고 할 것이다.
헐리웃이 무서워 지는 건 이제 부터라고 봐야할 것이다. 거대 자본에 동물과도 같은 흥행감각을 가진 제작자에 세계적인 명문 영문학과를 졸업한 각본/기획/감독 인력에 최고의 촬영기술, 세계적 컴퓨터 인프라, IMAX, DLP, Blu-ray, 디지털 다운로드 같은 차세대 미디어 배포를 가장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는 헐리웃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넘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그런 면에서, 새로운 속도로 생각하는 관객들이 생겨난다면, 새로운 속도로 보여주는 영화를 보여준 셈이다.
* 영화와 관련된 여러가지 언론의 보도 중 곧이 곧대로 들어선 안될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인터넷 언론 중 하나인 '뉴시스'의 기사제목이다. 이런 낚시성 기사를 많이 써서 곱게 보지 않던 언론사인데 역시나 이런 기사를 내 보내주신다. 이 제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비", "스피드 레이서", "한국"을 교묘하게 다 욕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피드 레이서가 흥행이 부진한 것은 여러 데이터가 보여 주고, 실제로 그런 그래픽이 부담된다는 사람도 있는 점에서는 납득이 갈만하다. 첫 주 흥행 부진도 아닌, "몰락"이란 단어로 "비"와 "스피드 레이서"를 동시다발적으로 수식하는 데 둔 것은 비를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과, 스피드 레이서에 탐탁지 않은 여러 사람들의 악플을 유도하는 말이다. 게다가 "예외는 코리아"라고 해서, 이런 흥행 부진 영화를 왜 한국만 좋아하는가, 하는 식으로 또한 논란을 유도하려고 한다. 비의 연기는 영화 속에서 자연 스러웠고, 한국 출신의 가수가 배우 겸업을 선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헐리웃 영화에 출연한 것 치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를 보여준다. 영어의 경우도 굉장히 연습을 많이 하고 대사 처리에 신경을 쓴 노력이 느껴진다. 비의 연기나 비의 영어실력이나 이런 것을 스피드 레이서에서 욕할 만한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듯 하다.
워쇼스키 남매
가장 눈에 거슬리는 보도태도 중 하나가 이 "워쇼스키 남매"라는 용어이다. 얼마전 래리 워쇼스키가 여장을 하고 대중에 나서고, 성전환을 위한 치료와 수술절차를 밟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 때부터 국내 영화관련 미디어들은 거의 확정이나 된듯이 "워쇼스키 남매"라는 용어로 영화 감독을 사용한다. 사실 이런 소문을 또 최근에 '사실무근'이라고 밝혀졌다고 하는데 (Lana Wachowski rumor http://en.wikipedia.org/wiki/The_Wachowski_brothers), 일단 이런 보도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영화 상에서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을 했다고 하면, 그렇게 표기하는 게 옳다. 실제 형제들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미 이런 것은 브랜드네임이 되었기 때문에 공식적 발표가 있기 전에 다르게 호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이번 스피드 레이서 역시 "워쇼스키 형제"로 크레딧이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