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this love? Hardly. As Carrie once told Big, “We’re so over, we need a new word for over.”>… http://goo.gl/q96u
<Is this love? Hardly. As Carrie once told Big, “We’re so over, we need a new word for over.”>… http://goo.gl/q96u
I’ll start a revolution from my bed.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듣다보면 저런 가사가 나온다. 옛날에는 뜻을 몰랐는데,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베트남전에 반대한 비폭력 시위로서 호텔 침실에서 벌인 프레스 컨퍼런스를 말하는 듯 하다.
어제 용산우체국에 들러서 부재자투표용지를 받아왔다. 겉봉투를 찢어 버릴 뻔한 아찔한 순간(반송용 봉투이기 때문에 찢어지면 안되고 부재자 투표당시 가지고 가야 한다고 한다)을 지나 깔끔하게 절개하니 안에서 눈부신 컬러의 선거안내문이 펼쳐져 나왔다. 유인물들을 보고 있으니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너무 모르고 산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많은 ‘이슈’들이 있었다.
원래 고향집으로 주소가 되어 있어, 한 동안 잘 모르고 지냈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것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교육위원 선거와 교육감 선거도 있어서 학창시절 생활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를 지날 때까지 나는 그 도시가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그다지 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공업도시라 소득 수준은 높고, 중화학 공업위주라 오히려 도심에서는 오염도가 심하지 않은 나의 고향은 지금은 가끔 내려가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에 잊고 있던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이번 부재자 투표 유인물을 펼쳐보면서 떠올랐다. 도시에 관한 불만과 학창시절에 받은 부당한 대우 같은 것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은 성장이라는 이름아래, 생활을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무고한 사람을 거리로 내 몰고, 학생들을 모의고사에 우울하게 하고 12시까지 학교에 붙잡아 두었었는지 모른다.
작은 핑크색 투표용지용 봉투를 들고, 얇은 종이들을 펼쳐보았다.(이 봉투와 투표용지에는 어떤 것도 표시되지 않은 채로 부재자 투표소로 가야한다고 한다.) 언뜻 기억도 나지 않는 여러 장으로 된 투표용지 위의 이름들을, 마음에 드는 후보들을 추려낸 유인물 옆에다 놓아 보았다. 그 순간 만큼은 ‘평소에 정치 같은 건 모르고 살았잖아’라는 말이나 ‘선거 한 번으로 달라질 그리 녹록한 한국사회가 아니다’라는 말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후보들이 주장하는 의견을 잘 살펴보고 나의 판단을 내리는 순간에 어떤 짜릿함 같은 흥분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문제가 많은 도시에서 자라면서 상처받고, 항상 흐리고 음산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고등학교 시절에 몇 번이고 뛰쳐 나가고 싶었던 야간 자율학습 시간의 내가 성인이 이렇게 복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신기하게도 관심을 가지고 보면, 다 똑같아 보이는 공략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진실이 보인다. 교육개혁을 열심히 주장하는 후보의 유인물에서 난데없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전교조 운운하는 문구가 등장하는 순간이 오면, ‘맞아 이거야!’하는 쾌감과 함께 선택에 적극 참고하게 된다. 그리고 부재자투표 용지를 다시금 조심스럽게 봉투에 넣고 가방에 구겨지지 않게 잘 넣어 두었다. 다니는 내내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무궁무진한 가능성 같은 게 있어 뭔가를 바꿀 힘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것은 내 방에서 시작한 작은 혁명일지도 모른다. 사회라는 체제에 대한 적극적인 컴플레인이 될 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실체가 불분명해져가는 민주주의의 얼마 안 남은 상징이니 아주 조심스럽게 행사해야 겠다.
윤성호 감독의 ‘우익청년 윤성호’와 ‘은하해방전선’을 보면, ‘수다스럽다’라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된다. 나도 말이 많지만 윤성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괜시리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거나 가끔은 그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거나 한다. 사실 입을 막고 싶은 순간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은하해방전선’에서는 아예 실어증에 걸린 영화감독 이야기도 나온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사실 제약은 없어진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Vimeo를 통해 복제를 허용하는 배급 방식의 인디시트콤은 굉장히 신선하지만, 왜 그 동안 이런 걸 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은 표현과 배포는 자유롭되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것을 의식하는 건 오프라인 보다 더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고편부터, 어쩌면 윤성호 감독에게 기대한 것은 이런 감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영화 속 유머와 농담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렇게 무차별 배포되게 되었다면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하지 않을까. 분량도 삶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4분 37초이다. 이렇게 친절하고 깜찍한 시트콤이 또 있을까. 것보다 아직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장 무시하고 플레이를 누르기 바란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바람난 가족’밖에 보지 않아서 필모그래피에서 하녀가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를 정확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섹스나 계급, 친자식의 문제 등등에 있어서는 비슷한 점도 많이 보인다. 그 때 그 사람들의 개봉 당시에는 나오는 배우 중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안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래된 정원은 원작이 주는 감흥이 무참히 깨질까봐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않고 있다. 하녀는 이미 김기영 원작을 미리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임상수의 하녀는 여러 면에서 원작이 주는 감흥을 주기에는 어렵게 만들어졌다. 주인집을 재벌로 만들기 위해 예의 그 ‘성장하는 중산층’-‘시골서 상경한 여공들’의 구도나, 좁은 2층집이 주는 긴장감과 공간이 상징하는 계급의 문제 같은 것이 다른 식으로 표현된다. 집은 너무 넓고 정돈된 분위기라 ‘디 아더스’에 나오는 유령의 공간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리고 이미 원하는 모든 것은 가져왔던 재벌집 주인의 태도에서 고뇌같은 것은 느껴질 틈이 없다.
특히, 원작에서의 담배나 쥐, 쥐약, 재봉틀 같은 대상이 전해주는 느낌도 많이 퇴색되었다. 특히, 피아노는 고급스러운 그랜드 피아노로 바뀌었고, 피아노가 욕망의 대상이면서 파멸에 일조를 하는 역할이 새로운 그랜드피아노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가정의 고급스러운 풍경을 위해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미장셴 등이 이야기와 그렇게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필요에 의해 선택된 수준의 대상들이 제시될 뿐이다. 가장 이질적인 장소는 배경이 되는 저택인다. 이 저택은 원작이 주는 좁고 불안한 구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굉장히 큰 저택도 아니다. 그리고, 캐릭터들이 생활하고 이동하는 각 공간 사이의 연관성도 크게 없어 보인다. 단지, 고급스럽고 무엇이든 비싸 보일 뿐이다. 주인 내외와 원조 하녀, 새로 들어 온 하녀와 딸의 생활 공간의 분배와 연관성을 엮는 것은 이야기 진행에 필수일텐데 사실 영화에서는 그런 관계의 긴장감이 공간에는 크게 반영이 되지 않는 듯 하다. 각 공간을 옮겨 다닐 수록 세트를 이동하는 듯한 느낌밖에 들지 않으니까.
하녀는 칸 영화제를 겨냥해서 만들었다는 노골적인 마케팅을 한 영화이다. 영화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말듦새가 엉망이거나 하지도 않다. 특히, 각 배우들이 애써준 연기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도 많다. 특히,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복수는, 옛날 <하녀>에서 보여주었던 복수의 방법보다 더 자기파괴적이고 처참하다. 이는, 새롭게 만들어진 <하녀> 전반을 아우르는 절대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은 계급적 차이에 대한 분노를 폭발한 것일수도 있다. 물론, 주인공의 선택에도 문제는 많지만.
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 수록 가식적인 미학적 장치로 가득한 불쾌감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주인집의 부유함을 보여주기 위한 가식이 아닌, 영화를 어떤 수준으로 올리려고 하는 가식처럼 느껴지는 불쾌감 말이다. 이는 영화의 말미에서 보여주는 기괴한 생일파티 장면에서 어떤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영화’가 취하는 태도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영화가 가치를 가지려면, ‘칸 출품을 목표로 했다’던가 ‘하녀의 리메이크’라는 편견을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오히려 바람난 가족을 좀 더 추상화 시키고 보기 좋게 다듬은 임상수의 새로운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Information Architects라는 팀이 트위터의 발전사를 우주 빅뱅에 비유해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태초에 3명의 유저들이 영향을 끼쳤던 것이 지금은 어마한 인구가 트위터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상위 140명의 영향력있는 계정을 #name #handle #category #influence #activity 등으로 분류했다.
일종의 트위터 영향력의 알고리즘인 트위플루언스 알고리즘을 시간화 한 작업.IT를 이끌어가는 여러 유명인의 계정을 확인할 수 있다. 트위터의 발전을 빅뱅에 비유한 건 좀 진부한 상상력이긴 하지만, 지금의 트위터의 영향력을 본다면 의미있는 작업 같다. 태초에 혼란에 가까운 인터넷이 있었고, 그 혼란을 요약된 글로 정리를 하는 약간은 덜 혼란스러운 웹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위터는 어떤 특정 회사의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종잡을 수 없는 생태계처럼 되어 버린 것도 빅뱅에 빗댈만 한 듯 하다.
트위터가 중요한 이유는 트위터에서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거나 트위터가 위키피디어를 이을 정보의 보고로서 역할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아직 수익모델이나 정보의 가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트위터는 그 동안 불가능한 ‘인터넷의 현재’ 즉 타임라인을 가장 간편하게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임에는 분명하다. 어쩌면 이메일이나 SMS같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와 어떤 식으로 연관을 지어갈 지 궁금하다.
* 가디언의 기사를 읽고 포스팅.
쿠거 타운은 코트니 칵스가 출연하는 시트콤으로 코퀘트 프로덕션(Coquette Production)과 ABC가 공동으로 제작한다.(국내에서는 올리브TV에서 방영중인 듯) 코퀘트 프로덕션은 코트니 칵스와 데이비아퀘트 부부가 차린 프로덕션으로 Dirt같은 TV쇼를 제작했었다.
미국 플로리다 새러소타 카운티(Sarasota County, Florida)를 배경으로 하는 시트콤으로 처음에는 이혼 후 연하 남자를 찾는 코트니 칵스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캐릭터들이 확실히 자리를 잡아서 시트콤으로 순항하는 중이다. 2시즌 방영이 계획되었다고 한다.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술 마시길 좋아하고, 단순하고 이상한 관계에 빠지는 이성적으로 이해는 힘든 시트콤이지만 나름 보다보면 깜찍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래 시퀀스는 시즌 피날레로 추정되는 에피소드 24에서는 쿠거 타운 사상 최고로 아름답다.
미국 의류 카탈로그 같은 장면들로 가득한 이 장면은 드라마 자체를 떠나서 굉장히 눈부신 듯 하다.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RT @namhoon: 음. 이건 혁명이로군요. http://bit.ly/bYf1d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