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정도에 해당하는 짧은 시트콤, 10개의 에피소드가 지난 월요일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윤성호 감독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구글링을 하거나 위키백과를 뒤져보지 말고, 이 시트콤 시리즈를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윤성호 월드 속의 캐릭터들을 '정상의 범주'에 넣기 위해서는 '정상의 범주'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사람에게 어떤 사정이 있다면 우리는 전 세계에는 각기 다른 150억 개의 사정이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서 처럼 깜찍한 캐릭터들의 세계에서 볼을 살짝 붉힌 채 아름답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정말 많은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구축해 온 캐릭터들이 한 데 모여서는 누군가의 시작으로 권투 포즈를 취하고 가벼운 펀치를 서로 연습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펀치를 연습하다 보면 150억년이 되어서 모두들 소멸하는 한 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150억년은 무한히 긴 시간이지만, 기약없는 시간은 아닌 듯 하다. 적어도 아이폰4가 발매되는 것 보단 빨리 올 지도 모른다.
짧은 시간안에 찍은 이야기를 캐릭터나 상황별로 잘게 쪼개어 10편의 에피소드로 만든 이 시리즈는 '인디시트콤'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선보였다. 독립영화라는 '돌립' 즉 인디펜던트 씬에 대한 지금 시대의 고민에 대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인디는 어떤 배타적인 형태의 활동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는" 굉장히 자유롭고 민주적인 예술활동이라는 것일지 모른다. 시트콤이라는 것을 즐기고 아이디어도 있다면 비메오(Vimeo)같은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해 무료나 저렴한 가격에 하나의 채널을 만들 수 있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현 시대의 '인디'를 소개하고, '인디'의 미래에 대한 하나의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들, '한국적'인 정서를 재치있게 표현한 시트콤의 소동들은 결국 재민이 그리워하는 하라의 이야기 혹은, 재민과 하라는 서로 그리워하지만, 결국 하라를 구하지 못하는 재민의 안타까움 같은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해결책은 150억년을 기다리며 스트레이트와 잽을 연습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결말이 이상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 결말이 제일 그럴듯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점차 들어왔다.
이 프로젝트는 2시즌이 나올 지, 확장판으로 다운로드 서비스로 제공될 지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조금 키워도 괜찮을 걸 같다. 유머 코드가 보편적이진 않지만, 한국에서 신선한 웃음을 주는 방법이 될 지 모른다.
은하해방 전선과, 우익청년 윤성호를 비롯한 윤성호의 귀여운 영화들을 본 관객들이라면 아주 재미있었던 10주간이었고, 종영이 매우 아쉬울 것이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뭔가를 해내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는' 영감이 되 주었다.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선택했을때, 아마도 전세계 최고 사양의 안드로이드 폰이 나올지 모른다고들 생각했다. SKT는 이를 위해 통신사 플랫폼으로서의 안드로이드 상표출원을 하고, 삼성은 안드로이드를 아예 휴대폰 상표로 출원하여 삼성-SKT를 통해서만 '안드로이드-안드로이드폰'이 발매될 수 있는 기형적인 초석마저 마련하였다.
과연 갤럭시S는 아이폰4만이 경쟁자일까?
갤럭시S의 광고는 사실 손담비가 "자체발광유기다이오드"라고 사이버틱하게 노래를 불렀던 햅틱 아몰레드 광고와 다를바 없다. 햅틱 "만지고 있을까?"나 옴니아"전지전능"보다 못한 오만함의 표현인 듯 하다. 갤럭시S로 할 수 있는 건 마치 쿨하지 못한 자신을 쿨하게 보이기 위해 페라리를 타는 수고를 마다않는 것 같은 일이다.
삼성은 심혈을 기울인 뭔가를 론칭할 때 광고에 실패하는 경향이 제법 있는데, 제일기획은 조금 더 실용적인 컨셉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 듯.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구글이 넥서스 원이라는 레퍼런스 폰을 내면서부터 이다. 다소 실험적인 모델이긴 했지만, 넥서스 원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클론에 가까운 디자이어보다 더 안드로이드에 최적화된 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넥서스 원은 국내 론칭을 하면서 KT에서는 광고 두 편을 준비했다.
KT의 광고는 넥서스원의 프리미엄을 내세우는 "누가 만들었을까"와 "음성검색"을 통해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대해 소개한다. 특히 고양이편 광고는 지금까지 본 휴대폰 관련 광고중에 잘 만든 광고로 손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감성적으로 다가가되 "구글의 음성검색"과 "음성검색이 탑재된 안드로이드 구글 폰"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폰 관련 광고와 관련해 또 눈길을 끄는 회사는 팬택이다. 스카이 브랜드의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진 지금 시점에서 시리우스-이자르-베가로 LG를 제치고 삼성에 이은 인지도 2위의 전략으로 포지셔닝을 하는 언론플레이로 유명하다. 이미 오프라인 샵 랏츠(LOTS)를 통해 팬택 제품의 체험샾 개념도 시작했고, 랏츠에서 아이패드와 아이폰4를 전시하는 전략도 사용하였다. 표면적으로는 당당히 경쟁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아이폰4가 발매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이폰4를 체험해 보고 바로 구입할 수 있는 팬텍 제품을 구입하라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스카이의 광고 전략들을 어느 정도 일정하계 계승하는 안드로이드 폰 광고는 극장에서 보게 되었었는데, 아마 가장 발빠르고 정확하게 광고 방향을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스카이가 탁월한 점은 "지구인 관찰일기"라는 컨셉으로 스카이의 주 고객층을 위한 '어플리케이션 활용'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광고 스타일도 해당 고객층이 선호할만한 스타일로 잘 표현되었다. 안드로이드-구글-스마트폰이나 휴대폰 스펙에 대한 키워드의 주입이 아니라 굉장히 자연스러운 접근법을 택한 것이다. 특히 음악의 선택이나 화면의 구성도 기존의 스카이 광고들의 퀄리티를 계승하기 때문에 스카이의 안드로이드 전략은 생각보다 잠재력이 큰 것 같다.
기기나 인지도에 비해 광고를 굉장히 잘 만드는 LG답게 세련되고 감각적이게 잘 만들었다. 이 폰에서도 안드로이드-스마트-구글 같은 식상한 접근 보다는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초점을 잘 맞췄다. 단지, LG의 단말기들은 항상 경쟁에서 한 발짝 뒤쳐진 채 레이스를 시작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쓰는 휴대폰들은 모두 평등할 수가 없다. 이는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넥서스 원 같은 제품이 있는 한 다른 안드로이드 폰들은 '클론'에 불과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삼성의 스펙은 수치상으로 고사양의 안드로이드 폰인 건 과열된 언론플레이를 통해 충분히 확인했다. 하지만 아직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슈퍼스마트"해 지려면 아직 많은 발전을 필요로 한다. 다른 제조사들처럼 좀 더 사용성에 초점을 맞춘 광고는 바라기 힘든 걸까. 아니면, 정말 햅틱 아몰레드 처럼, 손담비가 노래를 발표했다는 거 외에는 하나도 쓸모없는 껍질만 그럴듯한 휴대폰을 또 만들어낸 건 아닌지.
구글 넥서스 원의 광고는 어떤 것이 안드로이드를 잘 표현하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뭐 안 봐도 뻔하다.
"문제는 애플리케이션!"
사실 애플의 페이스타임만큼 잘 만든 광고도 없다. 여기에는 애플 아이폰4의 새로운 스펙이나 iOS4의 혁신적 API, 레티나 디스플레이 같은 찬사가 모두 빠져있다. 단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미군이 아내가 보여주는 초음파 사진을 보고 눈물을 글썽일 때, 보는 사람들 마저 가슴이 뭉클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이 있을 뿐이다.
최고의 스펙이나 최고의 사용성은 광고에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활발히 논의되는 법이다. 단지, 당신이 이것으로 뭘 할 수 있는지를 잘 제시해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 중 프레스티지를 기억하는 팬들이 얼마나 많을 지가 궁금하다. 흥미로운 것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메멘토와 배트맨 비긴즈 사이에는 인썸니아가 있었고,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 사이에는 프레스티지가 있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에게 놀란에 대해 설명할 때는 인썸니아와 프레스티지를 빼놓고 이야기해도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어릴때부터 영화를 만들었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놀란의 이력은 영화들에서 고스란히 빛을 바란다. 영화가 주는 스토리텔링의 재미와 그것을 통해 표현하려는 깊이가 굉장히 균형을 잘 맞췄기 때문이다. 인썸니아가 자신의 인식에 대한 의심을 메멘토를 확장하여 보여주고, 프레스티지에서는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관객을 그럴듯하게 속이는 기술을 보여준다. 그리고 프레스티지에서는 그러한 속임수들 중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실제로 그 내막을 알고 나면 너무나도 무서워질 실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크 나이트로 이어지기 까지, "현실과 허구", "선과 악"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테마를 실은 그 둘 사이의 경계란 극히 모호한 중첩된 부분을 영화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인셉션은 지금까지 그가 이야기를 꾸밀 때 사용한 트릭들의 원천에 해당하는 "꿈"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꿈"이라는 정신의 특성을 이용해, 스토리텔링에 블록버스터급 액션파워를 주입했다. 현란한 비주얼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눈이 쫓는 동안 머리 속에서는 뫼비우스의 띠를 추적하듯이 계속해서 단서를 짜 맞추어야 한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미로 그리기 테스트 처럼 그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복잡한 미로를 그리게끔 요구한다.
이 영화는 너무나도 깊이가 깊고 견고한 문학텍스트 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을 향한 문을 열어두었다. 그리고 영화 자체는 여러 레이어가 겹쳐진듯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은 만큼 영화에 참여해 즐길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인셉션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 그 이야기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작용하고 그것이 영감이 되어 행동을 바꾸고 결국은 모든 것을 바꾸어내는 단순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진리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구조주의, 탈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이론을 요약적으로 차용했던 영화가 매트릭스라면 인셉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철학 이론들에 대한 정교한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전혀 새로운 작품이다.
이러한 허구와 현실을 교묘히 비틀어낸 구조 덕분에, 영화는 비주얼적인 면에서나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에서도 논의할 가치가 많은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에디트 피아쁘의 음악은 영화음악에 대한 이론의 텍스트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은 무엇보다도, 다음 학기 각 학교 영문학과의 비평이론 수업을 들어야 할 학생들이 있다면, 한가한 여름에 인셉션을 두 세번 정도 봐 두기를 권한다. 당신이 다음 학기에 배울 것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든, 지젝의 저서를 이용한 수업이든 인셉션은 꼭 한번 활용할 영문학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셉션은 문학의 미래인지도 모르겠다.
* 그건 그렇고 아무리 천하의 놀란이라도 등장인물들 패션에도 신경 써 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패션은 빛이 죽어버리는 듯 하다. 그리고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놀란의 영화에 오면 매력을 잃어버린다.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과 <자정의 픽션> 두 단편집으로 알려진 박형서의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을 천연덕스럽게 오가는 데다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대목에서 유머를 꺼내든다. 특히 죽은 아내를 토끼로 환생 시키는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과 엄청난 지성두피에서 느닷없이 석유가 흘러나오는 농담으로 시작해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전쟁물로 끝나는 '두유전쟁'까지의 단편들을 읽고 났을 때는 박형서라는 작가의 장편은 어떤 것일지 매우 궁금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자정’이란 가라타니 고진이 그리워하는 ‘요란했던 근대’이후의 시간이다. 동시에 서사문학이라는 대가족 안에서 소설이 태동하던, 태아처럼 웅크린 채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홀로 자문해보던 근대 이전의 저 먼 ‘새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정’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얕은 꿈을 꾸거나 혹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고단하게 중얼거리는 시간이다. 어느 쪽이든, 아침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박형서, 「작가의 말」 중에서
그리고 작가는 오랜 시간을 태국의 뒷골목에서 보내면서 근대 이전의 저 먼 '새벽'을 나나라는 매춘골목에서 찾게 된다. 소설은 우연히 마주친 태국의 매춘부인 플로이를 다시 찾으려고 하는 한국인 레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번 왔었던 태국을 묘사하며 플로이를 찾는 생소한 이야기에 익숙해지는 순간 어느새 레오의 시각으로 소이 식스틴이란 공간으로 안내된다. 이 곳은 매춘을 업으로 돌아가는 한 지역의 다양한 매춘부들과 그로 인해 생겨난 경제의 고리들이 마약과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채 묘사된다. 레오는 소이 식스틴에서 전생을 보는 능력을 얻게 되고 아프리카 여행 자금을 술과 야바라는 마약으로 탕진하면서 플로이 옆에서 기이한 기생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의 가치는 소이 식스틴의 악취와 활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디테일한 묘사와 자기 검열의 모순에 빠지지 않는 타락의 표현, 그리고 무엇보다 전생에 대한 묘사와 수천년을 걸쳐 정교하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기획한 여러 이벤트들과 필요에 의해 다시금 소환되는 죽은자들의 영혼의 이야기가 주는 재미이다. 아주 길고 다양한 캐릭터와 생소하고 복잡한 배경 이야기들이 등장하면서도 소이 식스틴이 주는 퇴폐적 매력이 섞여있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어느 새 소이 식스틴의 허름한 매춘부들의 방에서 나가지 못하는 독자의 시선을 매료하는, 이를테면 레오를 매료했던 플로이의 존재같은 이야기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독자로서 더욱 더 좋은 점은 소이 식스틴의 악취나 죽음의 공포, 마약의 위험성이 모두 정제된 안전한 세계를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의 말미의 '작가의 말 '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당신의 영혼은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혼돈의 형태였다. 당신이 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한 돈은, 그 혼돈에 일련의 질서를 부여한 내 노동의 대가다.
이 말은 <이비사>라는 소설을 썼던 무라카미 류가 책에 쓴 후기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그는 이비사에 가 보았자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신이 찾는 것은 이 책안에 있다고 했다.
이비사는 마약과 섹스, 정신이상의 상태 등의 세계에서 자신의 파멸을 선택하고 그 끝까지 신념을 버리지 않는 마코토라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소이 식스틴의 파멸에 대한 이야기는 수 많은 매춘부들의 재잘거림 만큼이나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데 이 혼돈에서 우리는 노동의 대가를 구입하고 플로이와 레오를 둘러싼 시대를 편리하게 목격할 수 있다. 이비사라는 책을 읽은 우리는 사지가 절단되어 파샤라는 클럽에서 댄스를 하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질서가 부여된 혼돈을 읽을 수 있는 것 처럼.
이 소설은 정말이지 한 없이 허구에 가까운 픽션이다. 소이 식스틴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던 혼돈을 한 한국소설가가 끄집어내 질서를 부여해서 소설로 만들어 낸 것이다. 레오가 소이 식스틴의 이방인임을 느끼며 어느 순간 그 일대를 휘감은 거대한 생명력 같은 것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도 책을 통해 파멸이라는 에너지가 가진 생명력 같은 것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은 하나의 설화이며 우리의 수 천개의 전생의 일부일지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다행히 이비사의 마코토처럼 끝을 보지는 않고 레오는 택시를 타고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마 그 뒤로 소이 식스틴은 그의 기억에만 존재한 채 소멸해 버려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우선, 단순한 기분전환용으로 외국이라는 장소를 택한 것이 아니라, 태국의 매춘부들이 사는 지역이란 독특한 지역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우리나라 소설들이 흔히 겪는 좁은 장소를 넓힌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파멸을 묘사할 때, 너무 지저분하거나 너무 무관심하거나 하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자세하게, 자기검열없이 표현한 내용이다. 사실 한국 작가들은 이상하게 파멸이나 파국에 대한 묘사에서는 표현력이 떨어지고 진부해지는 경우가 많다. 새벽의 나나는 섹스에 대한 자유로운 묘사와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사실을 굉장히 생명력이 넘치는 문장으로 표현했다.
박형서가 안내한 타이의 뒷골목은 너무나도 생생해서 진짜 욘이라는 극중 캐릭터가 옆에서 야바를 하고 있을 지 모른다는 회상만 계속해서 되풀이하고 있다. 굉장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