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한 명이 XBOX360을 샀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그러니까 어제 용산역에서 한 참 돌아다닌데다가 전날 먹은 술이 덜 때 피로에 쩔어 있었을 그 때, XBOX360이란 단어는 졸음을 참다가 마침내 듣게 된 주말의 명화 테마음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안산 친구의 자취방까지 4호선 전철을 타고 졸면서 기어간 후. 거의 2일동안 한 자리에 누워서 비비적 거리며, 피곤하다는 핑계로 술과 안주와 아침으로 먹은 도시락까지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싸가지를 발휘하면서, 에어컨을 풀가동 해서 XBOX360의 게임 데드라이징(Deadrising)을 했다. 레지던트 이블/바이오 해저드 시리즈로 유명한 캡콤의 것이라 좀비들의 연기가 수준급인데다가, 호러니 스릴러니 하는 건 죄다 포장에 불과하고 결국에는 경쾌하고 펀(fun)한 살육의 게임이 될 거 라는 예감이 들었다.
산 당일날(out-of-box)이라 아무도 자세한 내용을 몰랐고, 친구의 집 텔레비전이 극악의 로-데피니션 해상도라서 그런지, 텍스트를 알아 먹을 수가 없었다. 간간히 나오는 스킷(skt)에 의하면 좀비로 가득한 초대형 쇼핑몰을 헤집고 다니며, 좀비들과 사진도 찍고 얼굴에 침도 뱉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라인딩을 해 주는 그런 내용이었다. 간간히 나오는 '사람들'도 도움이 필요하면 붙어 먹었다가 별다른 소용이 없으면 벤치 같은 걸로 간편히 찍어버려도 죄책감에 의한 데미지가 없다는 점도 매력포인트라고 할까.
데드라이징 록스타샷여하튼, 쇼핑몰을 헤집고 다니며, 약한 주먹을 날리며, 골프채로 샷을 날리고, 스케이트 보드로 그라인딩을 하고, 일렉트릭 기타와 테이져 건 같은 아기자기한 아이템도 있었다 에너지는 매점 바닥의 1갤런들이 오렌지 쥬스를 들이키면 만사OK였다. 그러던 중 공원에서 발견한 잔디 깎는 기계인 'Lawn Mower'를 발견했다.
드르르르륵.... 시동 케이블을 당기고는 파도 형태로 진행을 하면서 앞의 무수한 좀비들을 쓸어내려갔다. 초당 5명 이상의 좀비를 처리할 수 있는 이 기계를 플레이 하면서, 앞으로 척추뽑기나 체인쏘같은 아이템을 획득할 미래를 위해 포인트를 더 쌓아야 할 것이라는 발전적인 토론도 병행하였다.
이 게임은 비교적 높은 조도로 그리 무서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점컨트롤이 그리 훌륭한 시스템이 아니라 잘못하면 좀비를 유인하고 등을 돌리는 일이 많다. 그리고 수천마리가 한 꺼번에 렌더링 되는 공원의 좀비 커뮤니티 씬에서는, 가끔 멀리 빈 공터로 몸을 피해 달려가면 눈 앞에서 엄청난 무리의 좀비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사정없이 물어 뜯는 좀비들을 감내해 내야 한다. 이럴 땐 조금 서늘한 느낌이 든다.
게임과 영화의 오랜 동상이몽은 드디어 극에 달한 듯 하다. 이제 그 두 장르의 경계가 희석되려 한 때가 온 건 지도 모르겠다. 초기에 그래픽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액션을 제한한 3D게임들이 이제는 하드웨어 가속의 도움을 빌려서 풀3D의 가공할 자유도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영화들은 상당 수 부분이 3D렌더링으로 이루어진다. 그 동안 '좀비'같이 그로테스크한 재미로만 여겨지던 게임의 위치가 어느 덧 차세대 스토리텔링의 엔진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건 비단 한 두명의 생각뿐만이 아니다.
용산CGV에서는 HALO3가 해리 포터의 신작처럼 광고되고 있다. "개봉"이라는 단어 대신에 "공개"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 빼고는 "피터 잭슨"의 신작 영화같이 광고 되는 이 게임은, 영화보다는 훨씬 더 오랜 재미를 줄런지도 모른다. 가족 단위 관객의 하루 영화 관람료 정도면, 아이들에게 이 게임을 사 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헤일로의 세계에서 얼마간은 주말에 어디 안 가냐는 투정을 안 부릴 것이기 때문에.
어느 덧 헐리웃 영화들이 의외의 드라마적 깊이를 가지고 개봉을 하는 게 최근의 추세라면, 이제는 그 이야기의 구조를 멋대로 해체하고 조립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장르가 엔터테인먼트의 파이를 야금야금 차지하고 있는 게 다음의 추세일지도.
왜냐면, 데드라이징을 하는 내내, 나는 인터액티브한 좀비 영화를 보는 듯 했기 때문이다. 내가 조립할 수 있는 호러영화여서 딱 내가 원하는 만큼의 스릴과 액션을 맛 볼 수 있었다. 만일, 좀비영화였다면 계속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봐야할 것도, 데드라이징이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조립하고 해체해서 볼 수 있었다. 다음 장면은 내가 끔찍이도 좋아하던 것을 누군가 유튜브에 고맙게도 올려둔 것을 찾은 것이다. 이름하여 잔디 깎이 놀이(Lawn Mower F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