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2009

웰컴백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의 7년만의 장편소설인 1Q84를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띄엄띄엄 읽는 것을 누군가 못마땅해 한듯하다. 금요일 밤이 되어서 갑자기 인터넷이 끊겼다. 잠시 잠을 잤고 기력을 회복한 그날 심야에 책을 다 읽게 되었다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백수생활을 하는 친구가 먼저 다 읽고는 스포일러를 문자로 보내주려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사람과 상실의 시대를 읽은 사람으로 구별을 할 수 있다. 상실의 시대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를 갖고 있다는 것과 그의 작품에서 드물게도 리얼리즘 기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을 아는 정도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1Q84는 지금까지의 하루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기법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일종의 원더랜드의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알려진) ㅡ

Posted

패닉룸 무한도전

이번 주 무한도전의 패닉룸은 여러가지 면에서 굉장히 영리한 연출을 보여준다.

  • 컨테이너에 사람들을 가두고
  • 퀴즈를 낸다.
  • 맞추지 못하면 계속해서 고도가 상승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재미가 없다
  • 퀴즈는 발상의 전환을 요해서, 못 맞췄을때의 허탈함을 극대화해야 한다.
  • 피말리는 시간 제한은 필수
  • 어느 정도의 보상
  • 고도의 상승은 외부와 카메라를 연결하여 컨테이너 안으로 '방송'한다.
그리고 중간에 실시간 지령을 내리는 출연자도 등장함으로서 '이 해프닝'의 실시간성을 더하며, 컨테이너 안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패닉 상태에 빠진 출연자들의 표정을 면밀히 관찰한다.

하지만, 결론은 컨테이너를 띄우는 장면은 먼저 촬영한 것이었고, 출연자들의 컨테이너는 애초에 얼마 띄우지도 않았음이 드러났다. 아주 간단한 트릭들이지만 사람의 착각을 이용해 성공적인 연출을 했다.

Posted

변하거나 논의만하지말고 나와주면 안되겠니?

SKT 텔레콤 사용자라면, 트위터에 포스팅하는 몇 가지 방법이 이론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중 하나도 이성적으로 납득갈만 한 것이 없다.

데이터요금제, SMS/MMS의 호환문제, 위피 플랫폼 문제, 이메일 전송 문제 등의 얽힌 실타래를 풀려는 시도를 해본 결과 그나마 OZ로 옮기거나 KT용 노키아를 구입하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SKT는 그냥 시골집에 놓인 집전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통신서비스를 21세기 당당하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휴대폰을 보면, 이 휴대폰의 첨단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희생된 우리나라 고운 모래의 규소가 아까울 정도로 부끄럽다. 정부-재벌통신사-재벌제조사에 의해 형성된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한국의 IT의 껍데기안의 내용물은 휘-하는 바람소리가 날 지경이다.

한번씩 이어지는 '지인낚시통신'이나 '그래도 옮기시렵니까'식의 설문조사를 보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언론플레이로는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고', '성능도 뒤 떨어지기 때문에' 걱정안한다는 말밖에 안 하면서.

아마 이 모든 것은 '한국지형에 강한' 그 옛날의 애니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지형에 강한 애니콜이 정작 성장한 것은 해외에서 휴대폰 판매량이 늘어나서 이다. 제품의 경쟁력과 민족성이라는 약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고안한 저 카피는 그래서 더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의 휴대폰에 대한 이미지 저편엔 저 카페가 각인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는 휴대폰이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모 회사와 3D UI를 내세우는 경쟁사의 광고를 보면서도 드는 안타까움은 그래서 큰 것 같다. 이미 아이폰은 보는 것을 넘어서 경험에 이르는 휴대폰의 패러다임을 바꿔도 한참 바꿔났기 때문이다. 이미 음성통화 이외에는 쓰기조차 불편하게 만든 한국의 휴대폰과는 그 근본적인 의미가 다른 것 같다.

제발 그러니 변하거나 논의만 하지 말고 나와주면 안되겠니?

Posted

IE6라는 유물에 대해

맥북에는 호환성 떄문에 가상 윈도를 설치한다. 용량이나 속도면에서 제일 적합한 운영체제는 Windows 2000이다. 그리고 이 운영체제는 속도나 안정성면에서는 탁월하나 Internet Explorer 6이상의 웹브라우저를 쓰지 못한다. 더 월드라는 IE기반의 브라우저나 파이어폭스를 쓰면서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탭브라우징도 지원되지 않고 심심하면 에러를 뱉어내는 IE6를 어쩔 수 없이 쓸 때는 주로 우리 사회에에서 소비를 하기 위해 깔아야 하는 무수한 ActiveX들을 만날 때이다.

IE6는 5.5로 시작된 ActiveX시대를 상징하는 웹 브라우저이다. 97년에 나온 넷츠고라는 SK의 PC통신 서비스는 웹과 윈도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IE5.5의 확장 기능에 의해 탄생하여 IE6의 시대까지 이어졌던 이 PC통신 서비스는 전용브라우저가 설치되면서 기존 VT환경에 익숙한 사용자를 웹의 세계로 이끌었다. 전화모뎀으로 웹브라우저를 깔기에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는데 집에 공짜로 배달된 넷츠고CD가 있으면 IE를 설치할 수 있어서 굉장히 편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하면 유니텔이나 나우로웹프로는 안습에 가까운 소프트웨어 수준을 선보였던 기억이 난다.

넷츠고 시절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ActiveX인 OCX컨트롤러들이 꼬였을 때 대처방법이었다. 넷츠고의 화면이 뜨지 않고 [X]자만 떠 있는 화면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며 고객센터로 전화하곤 했다.

다운로드된 파일을 모두 삭제하고 다시 접속해 보세요 고객님

그리고 오늘날 까지도 ActiveX의 악몽과 함께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그 때만해도 인터넷 뱅킹을 할 때는 넷스케이프와 IE중 선택하게 되어 있었던 때이다. 하지만, ActiveX란 혁신은 인터넷에서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리얼미디어나 퀵타임을 자유롭게 플레이하던 첨단 기능 때문인지 Windows+IE의 표준은 정해지고야 말았다.

IE6는 어느덧 한국 웹의 표준이 되었다. IE7과 IE8의 업그레이드시 국가적으로 겪는 재난에 가까운 혼란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웹의 접근성이니 보안이니 하는 말보다는 컴퓨터에 깔려있는 아무 페이지나 잘 열리는(실은 그 브라우저에 맞게 디자인된) "인터넷" 아이콘에 익숙했다. IE6는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기 위해, 시장을 안방으로 끌어오게 하는 역할을 했고, 편리한 시장 상인들만 안방으로 드나드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소프트웨어의 첫째 미덕은 편리함일 것이고, 언제나 쉽게 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제일 중요한 미덕은 '보안'이다. 범국가적 DDoS사태는 무슨 브라우저를 쓰는지 알게뭐람...이라는 무관심의 책임이 아주 크다. 그리고 그러한 방관을 이용해 혁신을 게을리한 정부와 업체들의 연대적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IE6는 최근 "개발자를 살려주세요" http://resistan.com/savethedeveloper/ 라는 캠페인을 통해 최신 브라우저로 업그레이드 하자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로 옛날의 소프트웨어이다. 그렇다고 IE6를 쓴다고 옛날 라디오의 낭만이나 LP판의 지글거림의 운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딴걸 어떻게 쓰냐는 문제 많던 윈도95같은 유물인 것이다. 뭐, 가장 큰 문제는 IE6대신에 그 비슷한 수준의 호환성을 강요하는 IE7을 권장하는 지금 인터넷 환경이겠지만.

굳이 IE6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유독 인터넷과 IT에서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는 우리 나라에 대한 유감 때문이다. 다양성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이상한 모토아래 방치된 한국의 IT는 폐쇄적인 환경 아래에서 'IT강국'이라는 이상한 유령만 떠돌고 있다. IT강국이라고 외치는 이 나라에서는 외국에서 아무 브라우저나 열어서 계좌 잔고 조회를 할 수 있는 업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동의와 새로 고침을 지나 두 세번의 에러를 견뎌내야 한다. 인터넷이 이 정도면 다른 건 더 말할것도 없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이동통신 인프라를 가진 나라이지만, 아직도 통화 외에는 쓸 만한 게 없는 후진국이기도 하다. IE6의 점유율은 그런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더더욱 씁쓸하다.

무관심한 사용자의 책임이라는 건 사실 비겁한 것 같다. 애초에 웹 브라우저라는 것은 다양하고 안전한 사용을 위해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조차 못하는 제공자측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사용자가 웹 브라우저가 뭔지 신경써서 뭐 하겠느냐, 는 말하기 이전에 사용자가 무슨 웹 브라우저를 쓰는지 고민조차 하지 말도록 어떤 환경에서도 잘 열리는 인터넷이 만들어지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Po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