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의 정체
발신자번호표시(Caller-ID)시대에, 부재중 전화표시는 차마 받지 못한 전화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를 할 수 있게끔 한다. 나중에라도 전화를 해서 아까의 알리바이를 설명할 기회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가끔씩 아주 짧게 신호를 내고 흔적을 남기는 부재중 전화일 것이다.
조금 두꺼운 데님 팬츠 주머니에 전화를 넣고 길거리를 활보하다가 음악을 듣다보면 그 짧은 진동이 못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느꼈더라도 다른 유령진동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고 무시하고 가 버린다. 그리고 새로 보는 모르는 사람의 휴대폰 번호가 찍혀있다.대개의 사람들은 필요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인 휴대전화 사용습관에 비추어, '잘못된 전화'라는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조금 더 로맨틱한 상상을 한다.'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전화일 것으로 예상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짧게 남긴 메시지는 위급함의 표시일 수도, 내 쪽에서 좀 더 부드럽게 나간다면 관계가 원만해질 헤어진 애인의 긴장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미약한 흔적을 남긴 번호는 지인들의 이름으로 표시된 통화목록에서 길게 낯설은 숫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거의 대부분 이런 번호에 전화를 걸게 될 경우 지금까지의 기대는 산산히 부서진다. 모두들 거짓이었다. 나를 안다고, 내가 필요하다고 한 건 거짓이었다. 나에게 대출을 강요하고, 소비를 강요하는 앵벌이 전화였던 것이다. 지구 저편의 이름 모를 세력에 붙잡힌 언니들이 똑같은 톤으로 공포를 억누르고 녹음했을 저 무수한 ARS멘트들은 '남의 지갑 털어먹기가 굉장히 힘든' 시대에 새로운 골드러쉬로 통하는 전단지를 들이밀며, 삑삑거리고 있다.오늘 낮잠을 자던 중 우연히 찍힌 한 번호도 그런 목적이 다분해 보였다. 물론, 나에게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의외의 누군가로부터의 전화가 올 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걸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귀찮아졌고, 그런 기대를 하기에는 내가 너무 상처를 많이 받은 듯도 했다. 다행히 이런 전화번호를 DB화 해서 검색해 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번호를 누르면 스팸인지 아닌지 간단히 구별해 준다. 이 서비스에 관한 스토리는 블로그를 통해 알아볼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원하는 게 있다면, 이런 스패머들의 사연도 알고 싶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쓰레기 취급을 받을 정도로 집요하게 나를 필요로 했는지를.